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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산성탐방

경기도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 탐방기.....

by 풍경감각 2021. 5. 29.

경기도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 탐방기.....

권율장군 ''과 정조대왕 ''가 깃든 독산성과 세마대....

한양에서 해남까지 이어지는 조선시대 옛길 삼남길이 지나는곳....

오산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늘푸른 산림욕장....

동탄신도시를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작은절 보적사....

 

오산 '독산성(禿山城)''세마대지(洗馬臺址)'는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고 둘레는 3.6km이며 현재 400m의 석축과 동, , , 북문이 남아 있는 작은 산성이다

 

오늘은 독산성 산림욕장에 주차를 하고 남문으로 진입하여 독산성을 한바퀴 돌아보고 보적사에서 쉬었다가 하산을 하였다. 일몰풍경을 담고 싶었으나 구름도 사라지고 미세먼지가 가득하여 밋밋한 사진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독산성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오산과 수원, 화성에 걸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때 권율 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여주 파사성, 용진 토성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선조27(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4일만에 고쳐 지었으며 선조35(1602)에 방어사 변옹성이 석성으로 다시 지었다. 정조 16(1792)에는 약 70일간 새로짓는 것과 비슷하게 큰 규모로 공사를 했고, 정조 20(1796) 수원 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체제(協守體制)를 구축 하였고 경기남부지역을 견고히 방어했던 역사적인 유적지이다.

 

산 꼭대기에는 세마대가 복원되어 있으며, 내부 시설물로 성문 5, () 8, 우물 1, 수로 1개가 남아 있고 동문 안에 용주사의 말사인 보적사가 있다. 세마대 정자와 세마대 표지석 GPS좌표도 확인하고 접근로와 주차장, 식수대와 화장실, 등산로외 위험시설 등을 점검해 본다

 

권율장군의 세마병법으로 일컬어지는 전설이 남아있는 '세마대'는 정상에 있는 정자로 1957년 복원되었으며 현판은 이승만초대대통령 친필로 알려져 있다. 1593년 임진왜란때 권율장군이 근왕병 2만여명과 함께 주둔하고 있었는데 가토 기요사마(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벌거벗은 산에 물이 없을것으로 생각하고 물한지게를 산위로 올려 조롱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것처럼 백마를 산위로 끌어올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여 왜군은 말을 물로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할거이라는 오판을 하고 퇴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을 씻긴곳이라고 하여 '세마대(洗馬臺)'라고 부른다

 

절 중간까지 차량으로 쉽게 올라올 수 있는 보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세마사(洗馬寺)'라고도 부르지만 공식적인 명칭은 '보적사'

 

전설에 의하면 춘궁기에 먹을것이라고는 쌀한되밖에 없던 노부부가 이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쌓여 있는것을 보고 이 부부는 부처님의 은혜로 여기고 더욱 열심히 공양을 드렸다는 뜻으로 '보적사 (寶積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순노모를 생각나게 하는 보적사 요사채 주련입니다

 

모년일백세 (母年一百歲) 어머니 나이 백세라도

상우팔십아 (常憂八十兒) 항상 팔십되는 아들 걱정한다네

욕지은애단 (浴知恩愛斷) 그 은혜와 사랑 끝날때를 알고 싶은가?

명진시분리 (命盡始分離) 목숨이 다해야 비로소 끝난다네

 

코로나로 갑갑한 마스크 생활이 이어지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되찾을수 있는 5월을 보내고 희망찬 6월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5.8() 풍경소리 이규영셰르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