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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구인사, 온달관광지, 도담삼봉 단양 기행

by 풍경감각 2016. 4. 16.

소백산 자락 '단양기행'

 

천태종의 본산 '구인사(求仁寺)'

 고구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온달 관광지'

정도전이 사랑한 '도담삼봉'

 

♡ 일시 : 2016.4.16(토)

♡ 코스 : 단양 구인사~온달관광지~도담삼봉

♡ 누구랑 : 오동초등학교 15회 동창생들과 함께

 

소백산은 계절따라 철쭉, 주목, 야생화, 칼바람이 유명한 곳으로 여러번 다녀왔지만

단양을 당일치기로 천천히 기행하기는 처음이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단양팔경을 찾아 떠난 봄맞이로 고수동굴은 보수중이라서 생략하고

구인사, 온달관광지, 도담삼봉을 둘러보았다.

 

첫번째로 찾은 천태종의 본산 구인사...

한번에 56,000명을 수용할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조계종과 태고종, 천태종 등

불교의 종단에 대해서 알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일주문을 나와서 천태종불교박물관에 들러 경전과 불화, 불교용품에 대해서도 살펴볼수 있었다.

 

 

두번째로 찾은 온달관광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온달장군이 전사한 아단성의 위치가 어디인지 살펴볼 수 있었고

정도전, 천추태후, 태왕사신기 등 사극 드라마 오픈 세트장, 온달전시관, 온달동굴 등을 둘러보며 고구려의 숨결을 느껴볼수 있었다

 

 

세번째로 찾은 도담삼봉..

 

남한강 맑은물위에 떠 있는 세개의 봉우리 섬으로 강원도 정선에서 떠내려온 섬이라며 세금을 거두어 갔다는 재미 있는 일화와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을 사랑한 정도전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물살을 지그재그로 헤쳐 나가며 모터보트를 타고 시원하게 남한강을 가로질러 보았다

 

 

 

지금부터 구인사와 온달관광지, 도담삼봉의 포토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천태종 불교 중앙박물관>

 

구인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불경, 불화, 불교용품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불교천태중앙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 판본(목판)인 초조대장경 권 29(국보 257호)와 권 74(국보 279호) 등 국보 2점과고려 공민왕 때 간행한 것을 조선 태조 때 다시 펴낸 인천안목(보물 1015호) 등 보물 10점, 금동구층소탑 등 충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31점도 보유하고 있으며,간다라 미술의 부조상과 소조상, 티베트·미얀마·몽골의 불교 의식구 등을 볼 수 있는 불교미술품도 소장하고 있다.

 

 

 

 

 

 

각국의 여러가지 불교 경전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중국, 티베트, 한국의 불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교 공예품 전시관으로 다양한 불교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러가지 불상의 모습이다

 

 

 

 

 

 

 

깨달음의 상징이라는 군자의 꽃 연꽃을 설명해 놓았다

 

 

<구인사>

 

소백산 연화봉 아래 자리 잡은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 본산이다.

 천태종은 594년 중국의 지자대사가 불교의 선(禪)과 교(敎)를 합하여 만든 종파로 지자대사가 머물던 천태산에서 이름을 따 천태종이라 부른다.

고려 숙종 2년에 대각국사 의천스님에 의해 우리나라의 천태종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곳 주차장에 3,000원을 지불하고 구수한 입담으로 구인사를 소개해 주는 인기만점 운전사가 있는 셔틀버스를 무료로 타고 올라간다.

내려올때는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와야 한다.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상당히 길고 가파르지만 일주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서면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커다란 규모의 사찰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바깥세상과 절을 구분짓는 경계인 구인사 일주문이다

부처님께 바칠 공양을 힘겹게 들고 가는 보살들의 모습이 진지하기 이를데 없다

 

 

 1945년 상월 원각스님[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 칡덩굴을 얹어 암자를 지은 것이 구인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구인사가 터를 잡은 자리는 소백산의 비로봉·연화봉·국망봉·신선봉 등 구봉팔문(九峰八門) 중 제4봉인 수리봉 밑에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이른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연꽃이 핀 것 같다 해서 ‘연화지’ 라 부르고 있으며 좁고 가파른 언덕을 따라 가람을 좌우로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사천왕문'은 일주문에 이어 구인사의 두번째 관문으로 사천왕상을 모셔 놓은 곳이다.
사천왕상은 힘이 세기 때문에 사바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데 동쪽에는 지국천왕, 서쪽에는 광목천왕, 남쪽에는 증장천왕, 북쪽에는 다문천왕이 있다

이 사천왕들은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고 사하고 악한 무리들을 물리치며 사찰을 찾는 선량한 불제자들을 보살펴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인사 50여개의 당우들은 한번에 56,000명을 수용할수 있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수 있고  5층 대법당은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절은 천태종 중흥 3대지표인 애국불교,대중불교,생활불교의 참뜻을 실천하고 모든 불제자가 스스로 주경야선(晝耕夜禪)을 실행한다고 한다

 

 

따라서 낮에는 승려들도 작업복을 입고 울력을 하며 식량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종무원 건물이다

 

 

 

 

 

 

 

 

 

 

천태종 구인사의 '범종각'에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漁), 운판(雲版) 등의 불전사물(佛前四物)이 배치되어 있다.

 

 

 

 구인사를 방문할때 꼭 보아야 할 두가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다.

 

대법당은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5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으로

 상월원각 대조사가 삼간초암을 얽어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던 그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가 일생동안 종도들에게 가르쳐 온 모든 법문을 새겨놓은 비석이라고 한다.

 

 

 

'대조사전'은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의 존상을 봉안하여 2000년 11월 5일 낙성되었다고 하며

3층 다포집으로 전통 사찰양식을 띠고 있으며, 높이는 27m나 되며 밖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는 원통으로 탁터져 있고 높다란 기와들과 날렵한  지붕, 금빛의 단청이 참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 들더군요

 

 

대조사전은 금기와를 만들어 얹었으며 화려한 금빛 단청은 2700돈의 금이 소요되었으며

부를 지탱하고 있는 중심 기둥은  어마어마한 두께와 길이의 태백산 소나무(350년된)를 구해 12번의 옻칠을 했으며

못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목조 건물로 우리나라의 대목장이 시공을 했다고 한다 (출처 : 구인사 홈페이지)

 

 

 

 

<온달 관광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온달장군이 전사한 아단성....

특히 고구려 평원왕때 온달장군이 싸우다가 전사한 '아단성'의 위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으나

 학자들의 주장도 서울구의동 아차산성과 단양군 영춘면 온달산성일것이라는 견해라고 하니 그 분들에게 맞겨 두기로 하자.

 

압장료는 5000원으로 소백산 자락길과 온달산성, 온달동굴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온달관광지는 TV 사극 정도전과 태왕사신기 등 오픈 세트장으로

 지금도 각종 사극의 중간중간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온달관광지는 민속놀이장, 스포츠 타운, 여관, 향토음식점, 토산품판매점, 피크닉장, 온달촌, 온달관, 전설의 집, 전통혼례장 등 관광 편의 및 볼거리들이 있으며,

 관광지 내에는 4억5천만년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온달동굴(760m)과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연연히 전해오는 온달산성이 있다.

매년 10월이면 단풍과 국향처럼 고운 온달문화축제가 풍성하게 열린다.

 

 

 

 

 

 

이곳에서는 SBS드라마<연개소문>과 MBC드라마<태왕사신기>, 최근 KBS의 <바람의 나라>와 <천추태후>까지 드라마 대작들이 연이어 탄생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사진이 생동감 있게 배치되어 있고, 특히, 드라마 촬영 당시 사용된 의상이라던가 소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촬영세트장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멋을 풍긴다.

연못과 정자 주변에 조성된 정원은 한국식보다 중국식에 가까운 형태를 띠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물마다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창살은 각각 멋진 비례미를 드러낸다. 세트장을 둘러보며 창살을 잘 살펴볼 일이다.

건물 중에는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곳이 더러 있는데, 촬영 소품부터 고구려의 전통 복식, 연에 관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고구려'삼족오' 깃발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무덤인 동명왕릉 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금구'에 새겨져 있다

해의 흑점주기를 뜻하는 12개의 구슬이 연속 이어진 두개의 둥근 테두리안에 삼족오가 있는데

아마도 이 무렵 삼족오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숭배된 태양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온달관'은 고구려 제25대 평원왕과 제26대 영양왕 시대의 실존 인물인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삶을 역사 기록과 설화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고구려 700년 역사 중 온달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구려의 전성기가 지난 때이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던 당시 온달은 고구려의 명장으로 대외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다.

이후 온달은 신라군과 온달산성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남아 있다.

“고구려 장군 온달은 ‘계립현(충주와 문경 사이 하늘재)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출정한 후,

아단성(온달산성) 아래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출처 : 온달관)

 

 

'을아단'과' 아단성'을 설명해 놓아 온달장군이 전사한 위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잠시 단양군에 근무하는 직원이 조사한 자료를 참고로 살펴보면 이 지역 곳곳에 온달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있음을 알수 있다

 

 『군간나루 속세목이에 살던 한춘봉은 "여기가 온달 부대가 부상병 고치던 '군간(軍看)'"이라고 했다. 방터에 사는 노인 최용수는 "저기는 온달 부대 최전선인 꼭두방터고, 여기 중간방터는 보급부대 군량미 창고"라고 했다. 면위실(免衛谷)에 살던 할머니 김부덕은 "온달이 신라 포위망('衛·위')을 뚫고('免·면') 살아난 골짝"이라고 했다. 천지사방에 온달이었다. 하늘 꼭대기 온달산성은 400번도 넘게 올랐다. 출장 갈 때마다 면서기는 노인들 구술(口述)을 채록했다. 군관, 깃대봉, 대진목, 장군목이, 은포동, 장방터, 망굴여울 기타 등등 온달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마을이 120군데가 넘었다. 사지원리 적석총에는 온달이 묻혔고, 온달 도우러 날아오던 마고 할멈이 굳어서 선돌(立石)이 됐다고 했다.』(출처 : 단양군 자료)

 

 

많은 사람들은 고구려 장수 바보 온달은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접경 아차산에서 죽은 줄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 진단학회를 만든 사학자 이병도가 그렇게 추리한 이래 모두 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단양군 직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온달산성 위치는 아차산이 아니라 단양'이라는 논지였다.

 

한마디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은 계립현(문경새재 동북쪽 고개다)과 죽령(단양과 경북 영주 사이에 있다)

 서쪽 땅을 회복하겠다고 출정했다가 전사했다.'고 단정을 짓고 있었다.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온달의 효심,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했던 남녀의 이야기, 평민에서 한 나라의 영웅이 된 온달과 그를 내조한 평강공주…

온달과 평강공주에 관한 설화에 우리가 본받을 만한 여러 덕목이 담겨 있었다.

 

 

 

 

 

 

이 지방에 전해 내려오던 온달의 무용담과 산성을 엮어 온달산성으로 불리게 됐고 지금은 국가 지정 사적 제26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성곽을 따라 주변을 살피면  이 마을들 이름 중 절반 이상이 군사 용어로 되어 있다고 하며 예를 들면 은포동은 고구려군의 돌포가 있던 곳이고,

 면위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포위됐으나 죽음을 면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곳에선 매년 10월이면 ‘온달문화축제’가 열린다.

 

 

남한강의 맑고 푸른물이 유유히 흐르는 그 한가운데 솟은 세개의 봉우리 '도담삼봉 '

 

단양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은 일찍이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유년시절을 함께해 준 훌륭한 벗이자

 퇴계 이황 선생의 시심(詩心)을 흔들어 놓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정선군에서는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부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기지를 발휘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 라고 주장하여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깊은 사연을 알 수 없지만 훗날 정도전은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도담삼봉...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이름이 잘 어울려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감탄스럽다.

 

 늠름하고 당당한 풍채를 간직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아담하고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는데

남편봉은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를 멋들어지게 두고 있어 그윽하고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물길을 따라 모터보트가 지나가고 친구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도담삼봉을 스치듯 한 바퀴 돌아오는가 싶더니, 처봉과 남편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도담삼봉의 장군봉에는 '삼도정' 이라는 아름다운 육각정자가 있는데

때로는 어느 시인의 주옥같은 시 구절이 되어주고,

 때로는 팔도를 유람하는 묵객들의 그림이 되어 주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의 여유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쉼표로 남아있을것 같은 도담삼봉...

 

 

도담삼봉을 만난 퇴계 이황은 시 한수에 그 아름다움을 적어 노래했다고 합니다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爲泊仙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2016.4.16(토) 마운틴세르파 이규영

 

※참고로 특정 종교를 홍보할 의도가 없으며 본대로 느낀대로 작성한 스토리이며

자료는 구인사 홈페이지와 단양군 홍보자료를 참고했으며 촬영은 직접 했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