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읽으며 가슴 먹먹해 아무 일도 못했다"
중앙일보 신준봉 입력 2017.04.20. 14:16 수정 2017.04.20. 14:19 댓글 21개
김사인 시인 "서시 읽으며 마음 맑아져 웬지 죄지은 느낌"
김수복 시인은 윤동주 시 93편에 일대일 화답하는 시집 출간
이국땅에서 맞은 비극적인 최후, 영원한 청춘으로 남은 맑은 외모….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시의 생명력을 그의 삶과 떼어내 생각하기 어렵다. 스물일곱 해 남짓 사는 동안 일본 감옥에 갇혀 있던 2년 가까운 마지막 시기를 빼면 그가 자유롭게 호흡하고 활보한 시간은 불과 25년이다. 살아생전 등단도, 시집을 내보지도 못한 그가 남긴 시는 산문시·동시를 합쳐 110여 편뿐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 희생자였으리라는 정황만 존재할 뿐 정확한 사망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고, 체포되기 직전까지 일본 유학 기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들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이 모든 덩어리 속에서 그의 시는 계속 읽히고 사랑받는다.
지난해 영화 '동주', 초판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인기로 불 지펴진 그에 대한 관심이 올해도 계속된다. 물론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다.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인가. 왜 여전히 그의 시는 가슴 아픈가. 같은 시인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텍스트와 이야기를 모아봤다.
지난 2월 16일은 시인의 기일이었다. '농부시인' 서정홍씨는 자신이 해설을 붙이고 이영경씨가 그림을 그린 『윤동주 시집』(고인돌)을 날짜까지 기일에 맞춰 펴냈다. 책 앞머리에 서씨는 이렇게 썼다.
"(윤동주의)시집을 읽으며 어떤 날은 가슴이 먹먹하여 아무 일도 못하고 빈 들녘만 바라보기도 했으며,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고, 부끄러운 내 모습이 거울처럼 훤히 보여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때론 맑디맑은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넋을 놓고 한참을 하늘만 쳐다보기도 했으며, 내가 살아온 길과 시인이 살아온 길을 생각하며 눈물도 흘렸습니다."
윤동주의 맑음과 시인의 부끄러움, 아득한 둘 사이의 거리에서 화도 나고 눈물도 흘렸다는 얘기다.
시인 김사인씨는 윤동주의 지난해 기일에 맞춰 일찌감치 그를 그렸다. 창비의 시 소개 인터넷 팟캐스트 '시시(詩詩)한 다방'을 통해서다. 40분 가량씩 두 차례 윤동주의 시를 읽고 자신의 감상을 전했다. 김씨는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를 고르라면 머뭇거리며 '서시'와 '별 헤는 밤' 을 꼽을 것 같다고 말한 뒤 '서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순결한 한 젊은 영혼이 놓여있는 외로운 처지, 그런 가운데서 스스로를 향해 올리는 간곡한 기도 같은 것이 마치 정맥이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아주 투명하게 전해져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읽고 있는 내 영혼조차 맑아지는 듯하고 그러지 않으면 웬지 죄짓는 게 될 것 같은 숙연함마저 풍겨나온다."
김수복 시인은 윤동주의 시를 자기식으로 다시 쓰는 '도발'을 감행했다. 1955년 정음사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실린 93편 각각에 대한 자신의 화답시 93편을 묶은 시집 『밤하늘이 시를 쓰다』(서정시학)를 지난달 펴냈다. 윤동주 '원본'이 불러 일으킨 감흥을 바탕으로 시를 쓰며 윤동주 시 한구절씩을 꼭 집어넣었다.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사이가 참 좋다// 나와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새들과 새들 사이/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윤동주의 산문시 '종시(終始)'에 기대 쓴 '사이'라는 작품인데, '도착하여야 할∼' 이후가 윤동주의 문장이다.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김씨는 석·박사 논문을 윤동주 연구로 썼다. 95년 일본 도지샤대 윤동주 시비 건립에도 평론가 김우종씨 등과 함께 참여했다.
그는 "윤동주의 세계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세를 돌파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데 대한 끊임 없는 자책과 자기 성찰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게 그의 당면 과제였는데 그런 고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시대를 뛰어넘어 새롭게 읽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고의 윤동주 시 한 편이 어떤 것이냐고 묻자 '별 헤는 밤'을 꼽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우리는 별을 바라볼 때 세상 만사를 그 별을 바라보는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현실의 상처에서 회복된다. 갈가리 찢긴 채 분열된 현실의 자아에게 별은 상실한 주체성을 되살려주는 밝은 빛과 같은 존재다. 그런 느낌이 들어 이 시를 좋아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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