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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역사문화탐방

전남 화순 운주사 역사문화 탐방

by 풍경감각 2017. 7. 8.

전남 화순지역 역사문화 탐방

 

신비의 운주사 천불천탑과 와불...

쌍봉사 철감선사 묘탑과 묘탑비...

고인돌 유적지와 핑매바위 전설...

 

♡ 일시 : 2017.7.8(토)

♡ 코스 : 쌍봉사~운주사~고인돌~조광조 적려유허지~벽나리 민불

♡ 누구랑 :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단과 함께

 

'블랙야크 7월 역사문화탐방단' 40여명은 옛날 능주로 불리던 전남 화순지역의 운주사 천불천탑, 쌍봉사와 조광조 적려유허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벽나리 민불 등 정말 신비롭고 경이로운 역사의 흔적들을 탐방하였습니다.

  블랙야크 역사문화 전종현셰르파님이 전체적인 진행을 맡아 더욱 재미있고 전문적으로 해설을 해주셨고,

현지에서 전라남도 문화해설사 4분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각각 해당 유적지의 역사문화 해설을 추가로 해 주셨습니다.

 

시간관계상 김삿갓이 숨을 거뒀던 종명지(終命址)와 화순적벽탐방을 할수가 없어 아쉬었지만.

날씨가 무덥고 오후에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안전하고 즐겁게 트레킹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쌍봉은 절의 앞 뒤로 산봉우리가 두 개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쌍봉사는 신라후기에 창건되었고, 당나라에서 귀국한 철감선사 도윤이

 9산선문((禪門)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닦았으며,그의 제자 징효대사가 영월 법흥사에서 사자산문을 크게 열게 됩니다.

법흥사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창건할때 절 이름이 흥녕사였으며 적멸보궁이 있지요.

 

 

쌍봉사는 철감선사묘탑(국보 제57호)철감선사 묘탑비(보물 제170호)와

 1984년에 안타깝게 불에 타 보물에서 해제된 목탑 형식의 대웅전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지 해설사님이 쌍봉사 창건유래와 부자이야기, 그리고 윤씨와 칡넝쿨, 극락전 느티나무 등을 구수한 사투리로 해설을 해 주십니다

 

 

쌍봉사 사천왕문을 지나면 다른 절에서 볼수 없는 특이한 목탑형식의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로 1936년 보물(163)로 지정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84년 4월 신도의 촛불로 화재가 난후 보물에서 해제되었고, 1986년 원형대로 복원되었습니다

 중국은 전탑, 일본은 목탑, 우리나라는 석탑이 주종을 이루지만 화재전 쌍봉사 대웅전은

황룡사 9층 목탑,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의 대표성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일본 사학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의 화재를 막은 극락전 앞 단풍나무와 당시 불 속에서 농부가  업어서 구해냈다는 대웅전 불상 3불도 있지요

목탑 형식의 2,3층은 가운데가 막혀 있어 1층 대웅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대웅전이라고 합니다

 

 

 

 

 

 

 

극락전과 화재가 번지는것을 막은 느티나무입니다

 

 

 

 

 

호성전과 지장전

 

 

사찰 뒤 대나무숲으로 돌아가면 우리나라 승탑 중 가장 아름답다는 철감선사 묘탑이 보입니다

 

 

쌍봉사를 창건한 철감선사 도윤(道允, 798868)의 유골을 안치한 묘탑과 탑비를 같이 세웠는데

일제시대때 파괴되고 도굴꾼들이 파헤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57년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부도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조각되고 장식된 철감선사 묘탑입니다

 

 

 

 

철감선사 묘탑비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고 비신은 없지만 사각의 바닥틀위에 용의 머리를 한 거북이가 여의주를 물고

 오른발을 들어올려 앞으로 치고 나갈려는 모습까지 생동감 있게 표현된 가장 아름다운 비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다 만들었는데

새벽에 닭이 우는 바람에 거대한 부부와불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운주사....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미륵세상이 열린다는데 과연 그날이 올수 있을까요?

나는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로 시작하는 정호승 시인의 '풍경달다'라는 시와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일주문에는 영귀산 운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구름운 글자는 비우(雨)변 아래에 두개의 운(云)자가 있는것이 특이하지요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가기전에 양쪽으로 즐비한 석불군입니다

 

 

 

 

 운주사 초입에 서있는 천불천탑 마중탑인 9층 석탑(보물 제796)으로 운주사의 돛대탑이라고 합니다

 

 

용화세상을 꿈꾸며 자유로와지고 싶은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표한것일까요?

대부분 평면얼굴로 눈과 코와 귀까지 하나같이 수수하고 촌스럽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네요...ㅎㅎ

 

 

 

 

이 어린이는 오늘 몇개의 탑을 쌓을수 있을까요?...ㅎㅎ

 

 

 

 

수수하고 늘씬하게 서 있는 9층 석탑이 뒤쪽 3기의 운주사 7층 석탑과 가장 아름답게 조화를 이룹니다

 

 

대웅전으로 가는길 잔디밭에는 7층 석탑 3기와 팔각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돌부처가 등을 맞대고 정확하게

남북으로 앉아 있는 석조불감과  원형 다층 석탑이 있는데 이 탑을 호떡탑 또는 햄버거탑이라 부르더군요

 

 

 

운주사 원반형 다층석탑(보물 제789, 일명 호떡탑, 떡탑, 햄버거탑)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더군요

 

 

정확히 남북으로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투박한 석조불감(보물 제797)입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 오른쪽에 ‘천불래회운중주’(千佛來會雲中住 : 천기의 부처가 와서 모여 구름에 머물고),

왼쪽에는 ‘천탑용출편만산’(千塔湧出偏滿山 : 천개의 탑이 불쑥 솟아나 온산에 펼쳐져)이라는 글귀가 운주사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실패탑...

 

원형다층석탑(둥근떡탑)

 

 

운주사의 유일한 마애불로 마모가 심하여 희미하게 보입니다

 

 

공사바위(불사바위)로 올라가면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입니다

 

 

과거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창건할 때 이 바위 위에서 천불천탑 공사를 관리감독했다고 하여 이름지어진 공사바위에 올라선 탐방객들입니다

 

 

공사바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전경은 떠가는 배의 모습 같기도 하고 주변의 풍광은 미륵세계처럼 정말 아름답습니다

비가 내리고 습도가 높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사진을 찍기에 여간 불편한것이 아닙니다 

 

 

 

 

 

 

공사바위에서 왼쪽으로 돌아내려오면서 담아본 석불입니다

 

 

 

 

 

 

 

 

드디어 만난 운주사 명물 부부와불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와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니 어머니와 아버지일까요?

도선국사가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하룻밤사이에 만들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완성하고 일으켜 세우려 할 때

 어디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중단했다는 그 전설....

밤새 일을 도와주던 동자승이 지친 나머지 꾀를 내어 꼬끼요 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세우지 못했고,

 도선국사는 동자승을 머슴미륵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는데 머슴미륵은 비가 내려 사진을 못 담았네요

 

 

원반형의 일곱 개 바위가 있는 칠성바위인데 북두칠성과 같은 순서이고 별의 밝기에 비례해 돌의 크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풍요와 생명을 관장하고, 죽은 영혼이 돌아가는 별이라는 북두칠성의 칠성신앙을 나타내는 바위이지요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가까스로 몇장 담고 서둘러 내려갑니다

 

 

우중에 블랙야크 숄더백으로 변신한 모습입니다...ㅎㅎ

운주사 천붑천탑을 천천히 돌아보며 빛 좋은날 와불님과 칠성바위를 만나러 다시찾아 와야 할것 같습니다

 

 

2000년 유네스코 지정 화순 고인돌 유적지를 찾아 또 바쁘게 움직입니다

볼것은 많고, 비는 내리고, 땀은 흐르고, 사진은 찍어야 하고, 해설도 간간히 들어야 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977호로 지정된 고창과 강화도 고인돌은 탐방을 했습니다만 화순 고인돌은 처음입니다

고양이바위와 쥐의 형국에도 비보풍수가 적용되고, 핑매바위의 마고할미 전설과 함께 퀴즈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고인돌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ㅎ

 

 

'여흥 민씨 세거산’ 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핑매바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입니다

여기도 마고할미가 운주골 천불천탑을 위해 치마폭에 돌을 싸가지고 가다가 그만 닭이 울어 돌을 버리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닭만 안울었어도 미륵세상이 왔겠지요^^...ㅎㅎ... 왼손으로 저 위에 구멍으로 돌을 던져 볼까요?

 

 

 

 

 

 

화순 고인돌 발굴지 보호각인데 암사동 선사시대 유적지와 비슷하게 꾸며놓았더군요

 

 

 

 

적려(謫廬)는 귀양 또는 유배처를 의미하고, 유허(遺墟)란 오랜 세월 쓸쓸하게 남아 있는 역사적인 옛터를 말하는데 

조광조 적려유허지라고 하면, 조광조가 귀양을 와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란 얘깁니다

 

 

정암 조광조는 육척장신에 잘 생긴 외모로 여성들의 인기가 많았고 도학시대를 열고, 왕도정치를 표방한 중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결국 중종반정후 공신들의 공격을 받고 마침내 중종의 버림을 받아 화순으로 유배를 온지 1달도 못되어 사약을 받게 되지요 

 

 

기묘사화 때 죽은 조광조를 위해 세운 적려유허비와 영정각, 적중거가(謫中居家, 유배시 머물던 집),

애우당(愛憂堂,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집), 영모각 등을 현지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둘러보고 '절명시'까지 들어봅니다

 

 

 

 

 

 

 

 

 

 

 

 

 

조광조가 죽으며 남긴 '절명시(絶命詩)'가 적려유허지 강당 애우당에 걸려 있습니다.

 

愛君如愛父 (애군여애부)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 했고

 憂國如憂家 (우국여우가) 나라 걱정을 내 집 걱정하듯 하였노라

 白日臨下土 (백일임하토) 밝은 해가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나니

 昭昭照丹衷 ( 소소조단충) 가없는 이내 충정 길이길이 비추리라 

 

 

 

조광조는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지, 두껍게 하지 마라. 먼 길을 가기에 어렵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코스인 벽나리 '민불'로 민불은 '백성들이 만든 불상'으로 실제로는 기자석(祈子石 아들잉태 기도바위)인 입석(立石, 선돌)인지

 돌로 만든 장승(벅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신앙으로 간절한 기원은 잘 받아준다고 합니다

 

 

 

 

 

 

벽나리 민불의 온화한 미소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간절한 기원을 불러일으켰을까요?

 

 

민불 근처에는 배드민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용대선수 기념 체육관이 우뚝 서 있더군요

그리고 해설사분들 첫마디가 고현정도 화순이 낳은 딸이라고 합니다^^...ㅎㅎ

이곳에서 하루 2차례 회순적벽 투어가 있다고 하는데 못다한 숙제를 하나 안고가는 기분입니다

 

 

 

 

2017.7.8(토)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