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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산성탐방

BAC 클린도전단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번개 트레킹 이야기

by 풍경감각 2018. 5. 13.

BAC(Blackyak Alpine Club) 클린도전단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번개 트레킹 이야기들.....


♡ 일시 : 2018.5.13(일)

♡ 코스 : 팔달문~봉돈~창룡문~화홍문~장안문~화서문~중식~서장대~팔달문~통닭거리

♡ 누구랑 : 클린도전단과 그 친구들 14명과 함께....


정조대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조선의 신도시를 건설하라!!!


사적 제3호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정조의 효심이 가득한 조선 성곽의 꽃 수원화성...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을 보고 당쟁을 끊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


조선의 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축조된 수원화성의 모든것을 기록해 놓은 '화성성역의궤'...


'기기도설'을 공부하고 거중기를 개발한 정약용의 설계와 체제공의 공사감독, 공사실명판과 일을 한만큼 품삯을 지급하여

 2년 8개월만에 완공한 수원화성과 화성행궁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여유있게 걸었습니다

다음에는 사도세자와 헤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견릉과 용주사를 탐방하기로 했습니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장헌세자 (莊獻世子) 즉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양주 배봉산 자락)지금의 서울 시립대 뒤쪽)에 초라하게 묻혀있던 부친의 원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팔달산에 축성한 성이다.


둘레가 5,744m, 높이 4~6m, 면적 130ha로 1794년 1월 착공하여 2년 8개월의 축성기간을 거쳐

 1796년(정조 20년) 9월에 완공된 성곽으로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이다.

조선 성곽의 문제점을 보완한후 돌과 벽돌을 적절히 조합하여 축성한 수원화성은 정조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미려하고 아름답게 지어라' 아름답고 화려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말을 실감할수 있다





수원화성의 시설물은 문루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10, 은구 2등

 총 49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6개 시설물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현재는 팔달문, 창룡문, 장안문, 화서문 등 4대문과 43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장과 무기고가 있던 '연무대'다







성곽길을 걸으며 어김없는 클린활동을 전개하는데 의외로 담배꽁초가 많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이다




'방화수류정'은 원래 '동북각루(전투지휘소)'로 사방에서 바라보아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화성의 유천을 따라가면 아버지가 묻힌 화산에 이른다는 애절한 뜻이리라...





수원시정개발원에서 실시하는 수원화성 발전을 위한 설문조사에도 참여한다







정조대왕이 화산과 수원화성을 행차하실때 지지대를 넘어 첫발을 디딘곳이 장안문인데 북문임에도 불구하고 정문인 이유와

신문고 대신 억울한 백성들의 호소를 들을수 있는 '격쟁'과 '금난전권 폐지'와 시전과 난전 상인들의 이야기를

육의전과 비교하여 가볍게 설명하면서 힐링을 하고 있다 (윤진하셰르파 사진제공)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와 녹로, 동차와 유형거 등 기기도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야생화 단지를  지나간다
투구꽃이 있어 부자, 천남성 등 독초와 사약에 대해서 알아보고....ㅎㅎ



서장대에서 바라본 화성행궁과 종로거리 원경이다


화성장대인 서장대의 웅장한 모습이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한 '암문'으로 식량과 군수품, 병사들이 적에게 들키지 않고 드나들수 있는 작은문이다




화성 남쪽의 정문인 팔달문으로 옹성이 있고 사방팔방 길이 열린다는 의미로 보물 제402호다




화성 행궁(行宮)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 거처하는 별도의 궁궐을 말하며,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20여개의 행궁이 있었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1789(정조 13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으며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 ~ 96(정조 18년 ~ 20)에 걸쳐 진행된 수원화성 축성기간에 증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1762년 5월 창경궁 명전전 앞에서 영조대왕은 세자에게 자진하라고 명하고 이선을 뒤주에 가두어 선인문 앞으로 옮겨놓아

결국 비극적으로 죽게된다.  즉 임오화변과 선인문의 변이라고 하는 장면을 연상할수 있도록 뒤주를 전시해 놓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를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대왕은 참배 기간 내 화성행궁에서 유숙하였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성대히 베풀어주었는데 그 장면을 고스란히 재연해 놓았다.







당시 왕의 친위부대와 군례를 담당했던 장용영 군대가 무예통보지에 기록된 24무예의 시범을 신풍루앞에서 펼쳐보이기도 한다



화성행궁 앞 전통의 옛날 통닭거리 풍경이다



오늘 수원화성 트레킹을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5.13(일) 풍경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