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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역사문화탐방

서운산 철쭉꽃 축제와 안성 남사당패 풍물놀이, 신바람 속으로... ① 서운산 편

by 풍경감각 2018. 5. 12.

 

[서운산 철쭉꽃 축제와 안성 남사당패 풍물놀이, 신바람 속으로... ① 서운산 편 ]

 

♡ 일시 : 2018.5.12(토)

♡ 청룡사~은적암~좌성사~미륵바위와 석조여래입상~탕흉대~서운산성~정상~마애불~석남사~안성 남사당패 전수관 공연

 

♡ 누구랑 : BAC 역사문화탐방단 45명과 함께..

 

 

서운산(瑞雲山, 547.4m)은 높지 않지만 칠장산(七長山, 492m)과 더불어 안성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산입니다.

서운산은 고려 말 나옹화상이 이곳을 인근을 지나다가 상서로운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 청룡을 봤다는 전설로 ‘청룡산’으로도 불립니다.

 

특히 조선 말 경복궁 중건 당시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전국 제일의 남사당패란 극찬을 받으며 정3품 당상관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하사 받았던 안성 남사당패의 근거지가 되었던 청룡사와 천년고찰 석남사, 아름다운 철쭉과 단풍길,

 신비로운 전설과 설화, 우리민족의 고유신앙터까지 다양한 역사문화를 간직한 곳이 바로 서운산이지요

 

정상으로 올라가는 서운산성 오솔길 철쭉이 냉해를 입어 아름다운 꽃을 볼수 없었고 하루종일 비가 내려 여러가지로 불편했지만,

 서운산 산행을 마치고 전통의 남사당패 풍물공연을 관람하면서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날려버릴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릎 수술후 가료중일텐데 음료수와 쵸코파이까지 구입하여

공연장까지 달려와주신 여주의 권OO 도전자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항상 역사문화탐방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이 계셔서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비가 내려 많은 사진을 못 찍고 일부는 스마트폰으로도 찍었지만

서운산 역사문화탐방의 짜릿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018.5.15(화) 풍경소리

 

 

 

 

청룡사 사적비의 내용은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 명본대사가 창건해 그 이름을 대장암이라고 했는데, 보제존자 나옹이 지정연간(1341~1367, 원나라 순제의 연호)에 서운산 옆을 지나다가 지혜의 해가 거듭 빛나고 자비의 구름이 광채를 내어 신비한 징조가 있었는데 과연 꽃비가 내리고 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본 후 미소를 지으며 절을 크게 중창한다. 이때 나옹선사가 서기 어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고 해서 절 이름을 '청룡사', 산 이름을 '서운산'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나옹은 법당 외에 지장전, 만세루, 향응각, 극락당을 차례로 세우고 서운산 내에 은적암, 은신암, 청련암, 내원암 등 네 암자도 지었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사적비를 지나면 청룡사 입구 우측에 바우덕이 사당 안내판과 부도전(浮屠殿, 부도밭)이 보이고

직진하면 바로 청룡사 일주문을 겸하고 있는 대문이 보입니다.

 

 

 

 

 

 

 

 

 

청룡사엔 보물이 다섯 점이 있는데, 청룡사 대웅전 내에 보존된 청룡사 동종(보물 제11-4호),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괘불탱(보물 제1257호), 청룡사 감로탱(보물 제1302호), 청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제1789호)인데 증개축 공사가 한창이어서 구경을 못하고 나옵니다

 

 

 

청룡사는 불교사적보단 민속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절입니다. 조선시대 사하촌 불당골의 남사당패는 한 겨울을 청룡사에서 보내고, 봄부터 가을까진 청룡사에서 준 신표(信票, 일봉의 신분증명서)를 갖고 안성장터는 물론 전국을 떠돌면서 연희(풍물놀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안성 남사당패의 본거지는 청룡사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등장하는 광대들의 본거지도 바로 청룡사입니다.

 

 

 

남사당패는 겨울이 오면 청룡사로 되돌아와 아기도 낳고 연희도 가르치고 휴식을 취하며 이듬해 봄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이곳으로 중심으로 살아간 남사당패의 이름을 들추면 개다리패, 오명선패, 심선옥패, 안성 복만이패, 안성 원육덕패, 이원보패 등의 패거리 이름만이 지금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은적암(隱寂庵) 서운산 구름봉(雲峰) 아래 청룡사 부속 암자로 은적암, 내원암, 서운암 등이 있었는데

 은적암엔 선수(仙水)라 불리는 약수(대웅전 옆 샘물은 위장병에 특효로 멀리서 찾아와 머물며 병을 고쳤다는 소문)가 있습니다.

 

 

 

 

 

은적암을 지나면 서운산 가장 아늑하고 상서로운 곳에 자릴 잡은 서운암이 나옵니다.

서운암 전설엔 나옹화상이 이곳에 토굴을 파고 수행정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마을에선 서운암, 청룡사에선 토굴암이라고 부르는 이곳엔 한 명의 승려가 주재하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암자니 조용히 몰래 들어갔다가 나오겠습니다. 토굴암에선 절대 정숙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원랜 출입금지 지역이나 너무나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들어가 보겠습니다.

 

 

 

 

 

토굴암에 돌방무덤(사람 하나 들어가 누울 자리의 토굴)이 있고,

가장 서운산에서 가장 기도발(기도에 대한 응답)이 좋다는 '부엉바위'가 있으니 소원을 풀어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서운암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기 전 좌성사를 만납니다. 좌성사 대웅전 뒤엔 석간수 복천(福泉)이 바위 틈에서 나오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좌성사의 원래 이름은 약천사였습니다. 오래된 절은 아니고, 해방 직전에 지은 절입니다.

 

 

 

 

 

 

 

 

 

좌성사 위로 오르면 서운정이란 정자가 나오고 미륵바위와 석조여래입상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역시 아픈 사람들이 많이 와서 기도하는 곳이니 꼭 염두에 두고 계셨다가 뭔가를 기원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이곳은 예부터 내려오는 우물터가 여러 곳 있습니다. 조선시대 땐 이곳의 기도발이 좋아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서운정이 바로 기우제 제단터가 있던 곳입니다.

 

 

 

 

 

 

 

서운정을 벗어나 오르면 서서히 철쭉꽃들이 반기고, 토성(서운산성)을 따라 좌측으로 전망대인 '탕융대(蕩胸臺, 서운산성 서장대)'가 나타납니다. 탕융대 전망대에 서면 안성 서편과 평택 일대가 훤히 보이면서, 호연지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전망대 바위 위엔 '탕융대'라고 쓴 각자가 보입니다. 서운산성 서장대의 '탕융대' 각자는 1870년대 인근 선비들이 이곳 봉우리 정상에서 시회를 열고 조선 말 대유학자 성재 류중교에게 산정(山頂)의 이름을 부탁하자 '탕융대'란 글씨를 써줍니다. 탕융대란 ‘전망이 좋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모든 근심이 다 씻긴다’는 뜻입니다. 그 글씨를 받은 선비의 손자가 해방 후 석공을 데리고 이곳에 들려 바위에 '탕융대'란 글씨를 새겼다고 합니다.

 

 

 

 

 

탕흉대에서 정상으로 가다 보면 북문지(北門址)도 나오고, 흙과 돌이 섞인 서운산성의 흔적도 드러납니다. 곧이어 철쭉꽃 터널이 시작되고, 주변은 온통 철쭉꽃으로 투성입니다. 이윽고 전망 좋은 헬기장이 나오고, 조금 오르면 정상입니다. 좁았던 정상에 나무데크를 설치하면서 넓어졌습니다.

 

 

 

 

 

 

 

 

 

 

 

서운산에서 석남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릅니다. 하산길엔 병꽃들로 가득 합니다. 하산길에 만난 석남사 마애불입상은 나말선초 때 제작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미륵불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석남사는 용주사의 말사입니다. 석남사와 청룡사는 크기는 비슷하나, 청룡사가 아늑하고 조용한 시골 법당이라면 석남사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도시형 법당인 듯 보입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680년)에 창건됐고,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가 중창해 승려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전합니다.

 

 

 

문헌상으론 '태종실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 태종 7년(1407년) 숭유억불 정책으로 전국의 사찰을 통폐합 할 때 석남사가 안성을 대표하는 자복사찰(資福寺刹, 국가의 복을 비는 절)로 선정돼 살아 남습니다. 세조 3년(1457년) 석남사 승려에게 잡부역을 면제한다는 교지를 내리기도 했고, 명종 17년(1562년)에 영산전(보물 제823호)을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중건할 때도 선조는 범종을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석남사는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사찰로 부모은중경 탑비가 세워져 있고,

조선 초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석탑도 놓여져 있습니다.

 

 

 

 

 

 

 

석남사를 빠져나와 안성 남사당패 전수관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