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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역사문화탐방

안성 칠장사를 찾아서

by 풍경감각 2021. 1. 20.

안성 칠장사를 찾아서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 말사이며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5년(636)에 창건하였고 그 뒤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경내에는 대웅전, 사천왕문,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2동의 건물이 있으며 칠장사에 기거하던 갖바치를 찾아온 임꺽정에게 절의 승려가 말타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말을 주었고. 임꺽정은 이 말의 이름을 칠장마(七長馬)라고 불렀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국보 제296호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하여 혜소국사비, 철당간등 지정문화재가 많다. 또한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있으며 의적 임꺽정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원통문, 사천왕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7등의 건물이 있으며, 혜소국사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칠장사는 칠장산 산기슭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칠장로 마을 입구에 조선시대 동종형 분과 조금 지나면 철제 당간이 있고 칠장사 사적비가 있으며 주차장을 지나 일주문을 통과해야 경내로 진입할수 있다

당간(幢竿) 은 절의 앞에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높이 세운 깃대의 일종으로, 사찰의 입구에 세워 법회나 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나 불전을 장엄하게 하기 위하여 당(幢)이라는 이름의 기를 내거는 기둥이다. 절의 경계에 세워 덕이 높으신 스님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함과 종파, 문파를 알리기도 했으며 동시에 사원에 모든 액을 물리치는 의미도 있다. 찰간(刹竿), 장간(長竿), 정간(旌竿), 기간(旗竿), 치간(幟竿), 번간(幡竿), 범장(帆檣)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주로 나무, 돌, 구리, 쇠 등으로 만들었다.

 

칠장사에서 약 200m 앞쪽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주는 동서방향의 장축을 지닌 기단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은 모두 3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지주는 상면 바깥의 모를 주경 둥글게 처리하고 그 위로 1조의 종선을 표현한 것 외에는 장식을 하지 않았다. 당간은 원래 30개의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5개의 원통이 남아있으며, 제일 아래칸은 길이 68㎝, 지름 45㎝의 원통으로 하단에 각 칸칸 연결을 위한 폭 6㎝의 반구형 마디를 마련하였다.

당간의 끝에는 보통 당을 달아두지만, 현재 당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당간을 지탱하는 지주(支柱)만이 남아 있다. 당간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도괴되고 파손되어 그 유례가 많지 않다

현존하는 당간의 유례는 공주 갑사 철당간(보물 제256호)을 비롯하여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제41호), 안성 칠장사(시도유형문화제 제39호) 등 철제 당간 3기와, 석제 당간으로는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보물 제49호),담양 객사리 석당간(보물 제505호)과 비지정 당간이 몇 기 있다. 위의 네 곳의 당간 중 공주 갑사 철당간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기는 고려 시대의 작품이다.

칠현산 칠장사 입구 주차장이다 

칠현산 칠장사 일주문이다

칠장사 주차장이다

종은 안성시 향토유적 종 제25호로 1986년 5월 22일에 지정되었다고 밑둘레 222㎝, 밑지름 75㎝, 밑두께 6.5㎝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대웅전 내에 있는 이 동종은 종신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범종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종의 상단 용 모양은 쌍용으로 옆에 지름 2㎝의 원공이 있으며,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상대(上帶) 대신 원좌내에 범자를 8군데 조각하고 범자 밑에는 4유곽과 원형두광의 보살입상을 서로 바꾸어 조각했다. 명문은 「건륭사십칠년임인십 일월일시(乾隆四十七年壬寅十一月日時) 죽산도호부사이언충(竹山都護府李彦忠)」이라 했는데, 건륭47년은 조선조 제22대 정조6년(1782)이다.

극락전 안 꺽정불은 임꺽정이 봉안한 것으로 전해져 ‘꺽정불’로 불리고 있는 안성 칠장사 소장 목조불상이 충북대 연구팀의 연대측정결과 1540여 년인 조선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에서 <임꺽정>과 병해대사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가운데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를 위해 조성했다는 꺽정불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그 동안 불상의 진위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왔다.

그러나 충북대 연구팀이 꺽정불 밑 부분에 ‘봉안 임꺽정(奉安 林巨正)’이라고 쓰여 진 삼베 조각 등을 연대측정 한 결과 “1540년을 중간연대로 ±100년의 방사선 연대측정”이라는 결론을 내려 실제 임꺽정(?~1562)이 불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확실시 된다. 꺽정불은 예전부터 전란과 수많은 화마를 피해 내려온 칠장사의 귀중한 유물로서 문화재지정을 앞두고 있다.

칠장사의 묘미는 빛 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찬찬히 굽어보는 것이다. 새것을 덧씌우는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칠장사 대웅전이 말해준다. 오랜 풍상을 겪은 대웅전은 단청 문양을 세월에 날려보냈지만 힘있게 뻗은 추녀에서 힘찬 자태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의 기풍을 눈여겨 보고 있으면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자연스레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에 귀를 열게 된다.

삼불회괘불탱은 보물 제1256호로 1977년 9월 22일에 지정되었다. 1710년(숙종36)에 조성된 마본채색의 대영산회도는 가로 4.54m, 세로 6.28m의 화폭에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의 모임인 영산회를 그린 것으로 거신형 광배에 결가부좌한 석가불은 팔대보살, 십대제사, 사리불,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협시들로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신체에 비해 다소 크게 묘사된 방형의 얼굴은 표정이 경직되고 엄숙하며, 신광안에는 변형된 화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수미단 아래에는 사리불이법문을 청하고 있다.

 

문수, 보현보살과 나머지 보살들도 보존과 같은 얼굴 표정을 짓고 각기 합장을 한 모습이며, 제석, 범천은 약간 작은 크기와 채색을 달리한 얼굴을 하여 다른 보살들과 구별되고 있다.

 

상단에는 이중륜광의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각기 협시를 거느리고 배치되어 있는데 노사나불은 보살형으로 영락장식이 화려한 보관에 설법인을 짓고 있으며, 아미타불은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등 사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보탑은 화면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 상단에는 용왕, 용녀,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반원형의 광배 안에 9구의 보사로가 좌우 5구씩의 십방제불이 천상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괘불도는 하단은 영산회상도, 상단은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을 묘사하고 있어 상단을 떼어내어도 단독의 영산회상도를 보여주는 독특한 도상인데 삼심불과 삼불화를 가장 간략하게 묘사한 것으로, 이런한 간략화 시키는 구성은 조성후기에 유행하였다

 

칠장사 삼층석탑은 유형문화재 1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되어있으며 이 석탑은 원래 죽산 옛 사지에 각 주재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죽림리 460번지 성원목장에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28일 칠장사로 이전 설치한 것이다.

 

이 삼층석탑(경기문화재 179호)은 본래 죽산대사 천변의 구사지에서 인근 농원(강성원목장)에 옮겨져 30여년간 불모지에 머물다가 이를 안타까워하던 안성시 당국과 문화재위원의 도움으로 본 고향인 칠장사에 귀향하였다.

 

이후로 사찰을 찾는 수많은 불자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분향예배가 끊이지 않으니 비로소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아 천년의 한을 푼 탑이라 할 것이다.

안성 봉업사 석불입상은 본래 죽산리 봉업사터에 있었던 이 불상은, 절이 폐사되자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까지 흘러갔다. 자연 방치되다가 이곳 칠장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불상은 두광 아래로 발께까지 신광이 표현되어 있고,큼직한 꽃무늬 대좌 위에 모셔져 있다.

 불상에 비해 대좌는 풍상의 흔적이 적은 깨끗한 화강암이다. 불상은 특히 얼굴의 눈ㆍ코 부분이 마모가 심하지만 불상을 빚은 조각 솜씨는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다. 오른손을 들어 살포시 가슴에 얹고, 왼손은 차분히 내려 무릎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그 자태가 일품이다. 어깨에 걸쳐 가슴을 타고 내린 얇은 법의의 선, 3기의 화볼을 인 두광, 그 뒤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대의 조각 솜씨가 그 시대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한 조각솜씨를 미루어 보면 8세기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우수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이야기등이 있다. 칠장사는 임꺽정의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를 만나 이봉학등과 의형제를 맺은 곳이다. 갖바치는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가죽신 깁는 법을 가르쳐 가죽신이 안성유기와 더불어 안성 특산물이 되기도 하였다. 임꺽정이 난을 일으켰을 때 관군들을 피해 머물던 곳이기도하다. SBS드라마 임꺽정(1996~7년)도 칠장사에서 촬영된바 있다.

조선중기에 천안에 박문수라는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게된다. 어머니의 말씀도 있으셨고 해서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나한님께 불공을 드린후 잠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그날밤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서 과거시험의 시제를 알려주며 총 8줄의 답안중 7줄을 가르쳐주고 나머지 한줄은 박문수 니가 알아서 써내라 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일어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중 내내 나한님이 가르쳐주신 글과 마지막 싯구를 생각하며 걸어 걸어 한양 과거시험장에 도착하여 시험을 보는데 과연 나한님이 가르쳐준 시제라 깜짝 놀라고 만다. 나한님이 알려준데로 7줄을 쓰며 나머지 한줄을 써내려 가는데 일필휘지라!

낙조토홍괘애산(落照吐紅掛碍山) : 넘어가는 해는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는데,

한아척진백운간(寒鵝尺盡白雲間) : 찬하늘 갈가마귀는 자로재는듯 흰구름 사이로 날아가네

문진행객편응급(問津行客鞭應急) : 나루터를 묻는 나그네 말채찍은 빨라지고

심사귀승장불한(尋寺歸僧杖不閑) : 절을 찾아 돌아오는 중의 지팡이는 한가하지 않구나

방목원중우대영(放牧園中牛帶影) : 방목을 하는 들판에는 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망부대상첩저환(望夫臺上妾低환) : 남편을기다려 높은 누대위에 섰는 아내의 쪽그림자가 낮다

창연고목계남로(蒼然古木溪南路) : 푸른 고목이 들어선 냇가 남쪽 길에는,

단발초동농적환(短髮草童弄笛還) : 단발한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더라.

이 답안으로 박문수는 장원급제를 한다.

박문수가 나한님께 유과 공양을 올리고 기도한 덕에 나한님께서 답을 가르쳐 주셨겠지만 그의 인품으로 보았을때 효성과 사람 됨됨이가 나한님도 감동받을 정도의 성품이라 나한님께서 큰 선물을 주신것일 것이다.

이곳 나한전은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과거를 치르러 가면서 칠장사에 머물던중 꿈에 나온 시제가 과거 시험에 그대로 나와 장원급제를 하였다는 전각으로서 지금도 입시철이 되면 수많은 학부모들이 이곳 나한전을 찾아 기도를 한다.

혜소국사비(보물제488호)는 혜소국사( 慧昭國師, 972-1054)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로서, 비문은 상서좌복야 김현 선생이 짓고, 글씨는 전중승, 민상제 선생이 구양순체로 썼다.

 

혜소국사는 972년(고려광종3) 안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속명이 이씨요, 이름은 정현으로 10세에 삭발 입산하여 광교사 충회에게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융철에게 가츠림을 받으며,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고승으로 많은 사람의 후앙을 받았다. 대사는 말년에 칠장사에서 수도하면서 이절을 크게 중창하였으며, 1054년(문종8)에 이 절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

혜소국사가 칠장사에 머무를때 7도적과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내려온다. 일곱도적이 절에 와서 못된 짓 을 일삼고 하던 어느날 도적 한명이 절 약수터에서 물을 먹던중 물 박아지가 황금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몰래 품에 감추어 소굴에 돌아왔는데, 와서보니 평범한 표주박으로 변하는 일을 당한다.

다음날에는 다른 도적이 또한 이와같은 일을 겪고, 다음날은 다른도적이 또한 같은 일을겪는 수수께기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진다. 7도적 모두가 이 같은 경험을 다 겪고 나서야 "이 일은 분명 혜소국사님이 도력으로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라 하여 바로 혜소국사에게 찾아가 잘못을 뉘우치고 제자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혜소국사는 흔쾌히 허락하자 7도적은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하여 모두 훌륭한 아라한의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설화다.

이때부터 절 뒷산 이름을 칠현산(七賢山), 절 이름을 칠장사(七長寺)라 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 일곱 도적들이 어린아이들이었다고 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과자들을 불단에 올리는 불자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