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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경기권

(No.2015-54) [이달의 정기산행 명성산(鳴聲山 922.6m) 산행]

by 풍경감각 2015. 10. 17.

 

[이달의 정기산행 명성산(鳴聲山 922.6m) 산행]

 

♡일시 : 2015.10.17(토)

♡코스 : 자등현~각흘산~약사령~명성산~느치계곡~용화저수지~삼부연(三釜淵)폭포

♡누구랑 : 블랙야크 '나사산' 카풀 이용

 

명성산...

 

그 곳에는

은빛억새와

형형색색의 단풍과

그리고 아름다운 폭포가

가을을 한껏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가을철 수도권 억새산행의 1번지 명성산(鳴聲山)...

산정호수의 정취를 맛볼수 있는 아름다운 능선길...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 애환과 전설이 서려 있는곳...

 

 

 

 

<명성산 개요>

 

'명성산'은 '울음산'의 한자 표기인 울‘명(鳴’), 소리‘성(聲)’자를 써서 산이름을 부르고 있지요

궁예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3일동안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설과, 왕건의 신하에게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는 설이 있고,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할 때에 산도 슬피 울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포천 산정호수에서 자인사나 등룡폭포, 억새동산을 거쳐 삼각봉으로 오르는 코스와 신안고개 하산길은 여러번 올라

 이번에는 철원근 이동면 자등현을 들머리로 하여 각흘산을 거쳐 명성산 정상에 오른후

다시 느치계곡을 타고 용화저수지로 하산하여 삼부연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각흘산 방화선 능선길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와 금학산, 고대산, 광덕산, 상해봉과 한북정맥의 백운산, 국망봉, 도마치봉 등과

 멀리 화악산,석룡산,연인산,명지산,강씨봉, 포천 청계산 꼭지와 함께 용문산까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일망무제 조망이 일품이었습니다

 

날머리 '용화동'의 유래와 ''삼부연 폭포에 얽힌 전설은 덤이었고 마을어귀에서 세르파님이 권해 주신 한잔의 시원한 막걸리가

 하산시간에 맞추느라 숨이 차게 뛰어내려온 가슴속을 후련하게 해주더군요

 

삼부연폭포는 20여미터의 폭포수가 세번 꺾어져 가마솥같은 웅덩이를 만들었다고 해서 ‘삼부연’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울때 이무기 4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중 3마리가 도를 통해 용의 몸을 받고 승천하면서 바위에 3개의 구멍이 생겼는데

 노귀탕, 중간솥탕, 큰가마탕의 연못이 되어 삼부연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용화동이 되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같은 이야기를 듣고나니

막걸리 석잔을 다 못마시고 내려온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ㅎㅎ


 

<명성산 정상 인증컷>

 

 

 

<명성산鳴聲山(울음산)과 궁예 이야기>

 

궁예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산...

은빛억새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

산정호수의 영롱한 가을빛 물그림자...

 

후삼국의 맹주로 미륵불을 자처했던 궁예...

타고난 힘과 재주로 왕이 된 궁예...

병사들과 함께 베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며 생사를 함께 했던 궁예...

 

절문을 나선지 3년만에 철원에 도읍을 정했으나

이때부터 초심을 잃고 무도한 신정(神政)을 펼치고 관심법(觀心法)으로 정적을 제거하면서 민심을 잃어버린 궁예...

 

왕건과 싱거운 한판 승부...

홍유, 신숭겸 같은 장수들이 왕건휘하로 들어가고 민심도 그를 떠나고 말지요

 

명성산(鳴聲山)도 울음산의 한자 표기지만 궁예와 관련된 지명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지금도 명성산 지명에는 궁예가 적의 동정을 살폈다는 '망봉(望奉)'과 격전을 치룬 '야전골(野戰谷)'과

성동리 '가는골' 또는 '파주골'은 궁예가 단신으로 이 골짜기를 지나 평강으로 도망갔다고 하여 '패주(敗走)'가 변해서 된곳이고

항복문서를 전달했다는 '항서(降書)받골'도 있고

'눌치(訥雉)'는 궁예가 도주하면서 흐느껴 울었다는 곳으로 '느치'라 불리기도 합니다.

 

'궁예왕굴(弓裔王窟)'은 상봉에 위치한 자연동굴로 궁예가 왕건에 쫓겨 은신하던 곳이었고

또한 궁예가 목놓아 울었다는 ‘울음터’를 지나면 ‘궁예약수터’ 가 있고

'도마치계곡'도 궁예가 도망치듯 빠져나갔다는 말이 변해서 불리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기록에 의하면 궁예는 명성산에서 왕건에게 대패하고 쫓기다가 평강의 갑천에서 갑옷끈을 풀다가 농민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왕건의 영웅담 일색이고 궁예는 잔인하고 살인을 일삼는 폭군으로 묘사되지만 궁예 사후에 17년 동안이나 반란이 계속되었다고 하니 참 아니러니 한 일이기도 합니다.

 

왕건은 29번의 정략결혼을 통하여 지방 호족들을 장악하지 않았던가요?..

 

남자로서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일이지만 궁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무림이었으리라....짐작이 갑니다만...

 

▼ 지난번 맥킨리봉을 등정하신 김현주 사다세르파님과도 반갑게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자등리(自等理)의 유래>

 

조선조 중엽 숙종 2년(서기 1676년) 2월 김화(金化) 고을에 부임한 황후영(黃候永)이라는 현감이 현 자등 2리에 있는 상해암(上海巖)의 마루터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 볼 때마다 남녘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대동했던 신하에게 사유를 물은 즉, '남쪽 하늘은 원래부터 그렇게 빨갛게 물들어 있습니다마는 아마 무슨 곡절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그 후 병자호란으로 고초를 겪었다)”'하고 말하자 현감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면 이제부터 이곳 부락을 자등(紫燈)부락이라고 부르라”고 명명(命名)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이곳 마을을 '자등(紫燈)'이라 칭해 오다가 해방(解放)후 부터는 현재 법정지명과 같이 자등리(自等理)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지명유래 참고자료)

 

<자등현>

 

이곳에서 등산 채비를 갖추고 각흘산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반대편으로 오르면 광덕산으로 가는길이지요..

 

 

 

▼ 이 곳이 각흘산을 거쳐 명성산으로 갈수 있는 들머리입니다

 

 

▼ 아름드리 소나무와 낙엽송 그리고 굴참나무와 떡갈나무 등이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안보교육장인 승진훈련장이 있고 기계화부대 포탄 낙하지점이 근처에 있어서

 경고판에 500미터, 300미터,100미터, 50미터 접근금지 표기가 되어 있더군요

평일에는 거의 매일 훈련이 진행된다고 하니 통제에 잘 따라 낙탄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것 같습니다 

 

 

사너번 오르막 내리막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 헬리포트가 나오고 사방팔방으로 조망되는 풍경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더군요

누렇게 익어가는 신철원평야와 고대산.지장산,금학산이 눈앞에 보이고 가을하늘은 지독하리만큼 파랗게 다가옵니다 

신입사원 시절 동송과 와수리까지 출장을 나오면 버스가 일찍 끊겨 거래처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회사로 돌아가던 때도 있었으니

 참으로 물불 안가리고 뛰었던 아스라한 기억들이 잠시 떠 오르네요..ㅎㅎ.. 그때는 참 정도 많았던것 같아요..

 

 

 

북쪽으로 고대산, 지장산, 금학산과 신철원평야 그리고 용화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하....눈삽과 빗자루가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각흘산 건너편에 있는 광덕산 줄기입니다

 

 

 

 

<각흘산(角屹山 : 838.2 m)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약사동] 사람들이 산의 북쪽을 바라보았을 때 '소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각흘봉(角屹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철원군에서 최근 만든 정상목과 고양시 라이온스 산악회에서 설치한 스텐 정상표지와 삼각점(갈말 311)이 있었습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서면 철원 일대가 한눈에 보이고, 왼쪽으로 광덕산(廣德山:1,046m), 상해봉, 백운산(904m), 국망봉(國望峰:1,168m)이

 서쪽으로 용화저수지가 보이며 명성산, 안덕재, 자등현, 박달봉으로 산세가 이어지는 전망 좋은 산이더군요

 

 

▼ 산불 확대를 막기위한 방화선이 뚜렷한 각흘산 능선을 따라 멀리 명성산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도 포탄 낙하지점 경고표지판이 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각흘산 능선의 랜드마크처럼 서 있던 소나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서히 죽어서 고목나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직진하면 포탄 낙하지점으로 가파른 바윗길이 있으나 험로여서 이곳 조그만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가파른 등산로를 한참 타고  내려가면 약사령에 도달하게 되지요

 

이곳은 유신시절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故 장준하(張俊河)선생이 의문사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 약사봉인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더군요..

 

 

 

 

<약사령(藥寺嶺)의 유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를 잇는 고개로비포장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통일 신라 말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藥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약사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도평리에 있는 약사가 있었던 곳을 '도평리 사지' 또는 '약사지(藥寺址)'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는 유명한 약수터가 있었다고 하며,

 약사 주위에 약성(藥性)이 뛰어난 약초들이 많이 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왼쪽 표지판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면 명성산으로 이어집니다

각흘산만 오를 경우에는 여기서 고갯길을 따라 내려가면 오래된 다리를 지나 약사동 마을이 나오고 버스가 그곳까지 들어온다고 합니다

 

 

 

억새가 드문드문 나타나는 능선길을 오르내리면 명성산과 약사령과 용화저수지 갈림길 표지판이 나옵니다

몇몇분은 여기에서 인증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며 배낭을 맡아주고 있었습니다

사실 자등현에서부터 명성산까지 탈려면 꽤나 먼거리지요...

 

 

여기서 부지런히 올라야 명성산 인증을 하고 하산시간 4시에 맞출수 있을것 같아 서두르지만 배가 고파옵니다

산에 가면 늦더라도 전망 좋은 자리에서 점심을 먹는 버릇이 있어 동행자들의 불만도 듣습니다만

 기왕이면 풍수지리까지 논할정도는 아니더라도 시야가 탁 트인 장소가 좋지 않을까요...ㅎㅎ

 

 

각흘산과 광덕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떡갈나무 아래에서 초스피드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올라가니 많은 도전자들이 벌써 인증을 미치고 하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덕산과 각흘능선을 다시한번 뒤돌아봅니다

여기서 우측으로 150미터 지점에는 포천에서 세운 삼각봉 표지석이 있고 왼쪽으로 350미터만 올라가면 철원에서 세운 명성산 정상석이 있지요

 

 

드디어 정상입니다...

맥킨리 등정과 산악구조대 등 다양한 산악활동을 하시는 김현주 사다세르파님과 함께 반갑게 인증사진을 찍어봅니다

 

 

약간 아쉬움을 남긴채 정상석 아래 인증메이스 캠프에 들러 정기산행 진행을 하신 세르파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궁예봉과 신안고개 방향을 잠시 조망해 보고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산정호수 뒤편으로 몽베르 골프장 끄트머리도 보이네요..ㅎㅎ

 

 

다시 용화저수지 갈림길로 향하면서 잠시 여유를 부리고 억새와 함께 햇빛샤워를 즐겨봅니다

역광모드에서 빛갈림 현상도 만들어 보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구도가 영 잡히지를 않습니다

 

 

 

 

 

 

 

 

갈림길 근처에 도착하니 집채만한 배낭을 지고 올라가는 백패커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게 다가옵니다

붉게 물든 석양녁의 아름다운 배경과 하얀 억새들...

그리고 검붉게 동이 터오르는 산그리메를 배경으로 억새를 촬영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젠가는 나도 백패킹 장비를 구입하여 카메라 둘러메고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을거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잠시 해봅니다..ㅜㅜ

 

 

여기에서 용화 저수지 방향인 우측으로 빠져 들었으나 사진을 찍다 보니 늦었는지 아무도 없습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거의 매번 끝물이지만 4시 카풀출발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나의 특기인 산악마라톤 수준으로 뛰다시피 내려갑니다

 

 

발길은 바쁜데 숨어 있는 비경 느치계곡의 오색단풍이 환상적으로 물들고 발목을 잡아챕니다...

이쯤에서 끝물로 내려가는 일행들을 만나서 물도 나누어 주고 무릎이 아프다고 하여 천천히 뒤에서 내려옵니다

수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유명계곡보다 호젓한 느치계곡의 깜짝 단풍선물이 감동을 주고 갑니다

이곳은 궁예가 단신으로 도망갔다고 하여 '눌치'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 숨어있는 비경 석천계곡...

궁예가 홀로 평강으로 도망갈때 지나갔다는 눌치 즉 '느치계곡' 이라고도 하지만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더군요

우측 능선길을 따라 안전하게 내려갑니다

 

 

드디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리듯 내려오니 조그만 주막이 있는 용화저수지 입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세르파님께서 수고했다면서 권해 주신 시원한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입니다

그리고 물도 보충하고 끝물팀을 기다렸다가 차량으로 천연동글을 지나 삼부연 폭포로 향합니다

 

 

<삼부연폭포>

 

높이 약 20m의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고, 세 군데의 가마솥 같이 생긴 곳에 떨어진다 해서 삼부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후삼국시대에 이무기 4마리가 도를 닦고 이 연못에서 살다가 그 중 3마리가 용의 몸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면서 3개의 바위구멍을 만들었고, 이 3개의 바위구멍에 물이 고여 노귀탕,솥탕,가마탕이 되었다고 전해져오며 철원8경 가운데 하나이며 경치가 빼어나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鄭敾)은 이곳을 지나다가 진경산수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마을 이름도 이무기가 용으로 변했다는 의미로 용화동(龍華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지명유래집)

 

<삼부연폭포 참고글 >

 

강원도 철원군의 남쪽 갈말읍 신철원리에 위치한 폭포이다. 높이는 약 20m 정도이다. 『여지도서』 철원도호부 산천조에 "삼부연(三釜淵)은 용화산(龍華山)에 있다. 여러 시내가 뒤섞여 모여 갈수록 깊고 점점 커지다가 석벽에 거꾸로 걸리면서 문득 3층의 돌구덩이를 만들었다. 그 깊이는 알 수 없는데 모양은 세 개의 가마솥과 같으므로 그렇게 이름 부른다. 곧 기우처(祈雨處)이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폭포가 삼단으로 꺾어지고 가마솥처럼 움푹 파인 못이 세 개가 있어서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숙종 때 삼연(三淵) 김창흡이 가족을 이끌고 이곳에서 은거하기도 하였는데 삼연은 바로 삼부연을 상징하는 별호이다.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부의 동남쪽 끝 용화산 밑에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는 도를 닦던 4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는데 3마리가 폭포의 기암을 각각 하나씩 뚫고 용으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또 그때 생긴 세 곳의 구멍에 물이 고인 것이 삼부연이며, 마을 이름도 이무기가 용으로 변했다는 의미로 용화동(龍華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용이 승천하며 남긴 상단의 못을 노귀탕, 중간 못을 솥탕, 하단의 가장 큰 못을 가마탕이라 부르고 있다. 철원팔경의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데 폭포 옆에 부연사라는 절이 있고, 폭포와 부연사 사이에는 오룡굴이라는 터널이 있다. 이 터널을 지나면 용화저수지와 한국전쟁도 피해 갔다는 용화동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부연사 · 뉴삼부연타운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명성산 인증을 마치며...>

 

억새와 단풍 폭포의 가을풍경 삼박자를 맛본 명성산 산행...

그 동안 산정호수와 억새동산 방향으로 오르내렸던 명성산이었지만

각흘산과 느치계곡이라는 색다른 코스로 다녀와 숨어 있는 비경들을 감상할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화려한 앞면보다 소박한 뒷면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주변에 소외되거나 빛이 없는 그늘이 있는지 다시한번 뒤돌아볼수 있는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

안전한 카풀 운영과 멋진 산행코스를 리딩해 주신 강인철 세르파님께 감사드립니다

 

2015.10.17.

풍경소리 이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