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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충청권

생거진천 두타산 산행 이야기

by 풍경감각 2021. 1. 5.

‘생거진천(生居鎭川)’ 두타산(頭陀山, 598m) 나홀로 산행을 다녀오다

코로나때문에 유명 명산들의 입산이 통제된곳이 많아 인적이 드문 진천 두타산을 다녀왔습니다. 두타산은 대부분 동해 무릉계곡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천 초평면, 괴산군 도안면과 증평읍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두타산도 있습니다

동잠교에서 출발하여 눈이 조금씩 쌓여 있는 능선길을 타고 정상에 올라 블랙야크 명산100+ 인증을 하고 영수사로 하산하였습니다.

두타산 자락에 자리잡은 영수사((靈水寺, 918년 고려 태조)는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8경 중의 하나로 중통국사가 창건한 절로 가을철 석양녁에 단풍으로 물든 두타산 계곡에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특히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수사 대웅전에 보관중인 보물 제1551호 '영산회 괘불탱'은 1653년 백련사에서 4명의 승려가 그린 것을 영수사로 옮겨 왔으며 가로 5.79m, 세로 8.35m에 이르는 대형 괘불탱화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괘불탱으로서 조선 후기의 불교회화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두타산은 진천의 진산으로 작은 산이지만 능선길의 조망이 탁 트여있고 붕어마을까지 종주산행 코스로 인기가 많은 명산이지요

신축년 첫산행을 이곳 진천까지 내려와 사람과 사람을 피해서 혼산을 하면서 송신소와 중심봉으로 거쳐 초평저수지 한반도 지형과 붕어마을까지 이어지는 종주코스와 농다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올라왔네요.

코로나가 하루빨리 퇴치되어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함산하기를 기원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1.3(일) 풍경소리

 

예로부터 충북 진천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즉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진천지역은 평야가 넓고 토지가 비옥할 뿐만 아니라 저수지 또한 많아서 가뭄과 물난리가 별로 없어 농사짓기가 편안하여 예로부터 인심 좋아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여 ‘생거진천’이라 하였고, 용인지역은 산과 물의 경치가 좋으며 산세가 순후하여 가문과 지체가 높은 사람들의 산소가 많기에 ‘사거용인’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혹자는 조선시대 왕릉은 한양에서 팔십리 이내에 조성해야 했으므로 사대부들이 팔십리 밖에서 가까운 용인근처에 조상들의 묘를 쓰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말이라고도 하더군요

 

동잠교 주차장에서 큰길을 따라 100m정도 지나면 능선길 등산로 입구가 나옵니다

 

정자가 세 군데나 있어서 쉬어가기 좋더군요

 

 

진천의 명물로는 농다리와 초평저수지를 꼽을수 있습니다. 농다리는 충북도 유형문화재 28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 예로부터 굴티마을 주민들은 이 돌다리를 ‘농교(籠橋)’ 또는 ‘농다리’라고 불러왔습니다. 진천농교(鎭川 籠橋)는 진천읍을 관통하는 백사천과 이월면을 적시는 덕산 한천천이 합류해 흐르는 백곡천에 놓인 돌다리로 농다리, 수월교라고도 하며 지네를 닮았다고 지네다리라고도 불립니다. 조성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사료가 없으나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부친 김서현 장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놓았다는 설과 구곡리 출신 임연 장군이 고려 후기에 고향인 세금천에 놓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충북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초평저수지는 충주호와 함께 가장 유명한 붕어낚시터로 두타산 삼형제봉 한반도지형전망공원에서 초평호 한반도지형을 볼 수 있습니다. 위로는 중국이, 아래로는 한반도 지형과 제주도의 형상, 일본 열도가 있는 것처럼 보여 보는 사람들마다 깜짝 놀라며 그 주위로 배처럼 떠 있는 좌대가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정상 아래 가파른 오르막길.....

 

 

정상에는 삼국시대의 석성인 두타산성의 옛터가 남아 있고 부근에는 황금색 갈대밭이 우거져 있습니다. 산성의 규모는 높이 1.2m, 너비 2.7m, 성 둘레 약 1km 입니다. 성터에는 돌무더기가 오랜 비바람에 검게 변화되어 있고, 안에는 성재(聖裁)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두 개의 우물 터가 있습니다. 

 

통신대로 가는 능선에 옹달샘도 남아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장군 실죽이 백제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하며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과 기와조각 등과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두타산은 원래 두태산이라고 불렀고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진천의 진산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통신대와 중심봉 그리고 삼형재봉을 지나 한반도지형을 조망하고 초평저수지 붕어마을로 하산할수 있는 명산입니다

두타산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한민족의 시조 단군이 팽우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비가 날마다 내렸고,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디고 합니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는데 이때 팽우가 이 산에 머물자,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 두(頭) 섬 타(陀)를 써서 두타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두타산 정상석은 3개나 있더군요

 

통신대와 중심봉 그리고 삼형제봉을 지나서 초평저수지 붕어마을까지 종주코스가 이어집니다

 

인적조차 끊긴 고요한 영수사....

 

영수사에서 동잠교까지 약 2km정도를 걸어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