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1코스 당고개역~화랑대역 (1-2구간)]
♡ 일시 : 2015.12.6(일). 11:20 ~14:20(약3시간)
♡ 코스 : 당고개역>철쪽동산 스탬프(인증)>불암산 구간>공릉동전망대(인증)>화랑대역 소공원(인증)>화랑대역
♡ 누구랑 : 옆지기랑...
♡ 준비물 : 둘레길 지도, 스탬프북, 인증지점 좌표 입력(산길샘)...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둘레길 1코스의 1-2구간인 불암산길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하늘을 품은 포근한 숲길' 이라는 테마로 당고개역에서 출발하는 코스를 주로 선택하며
불암산과 수락산을 잇는 덕릉고개(덕릉은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묘의 별칭) 생태육교 코스를 크게 돌아서 걷는 경우도 있다.
불암산 하면 맨먼저 떠 오르는것이 고등학교때 배웠던 유주현선생의 '탈고(脫誥) 안될 전설'이라는 수필이다.
6.25전쟁을 배경으로 불암사의 여승을 찾아 오는 한 남자의 서글픈 전설과 그 별리(別離)를 끝내 탈고하지 않을것이라는 이야기들...
".....향리 노원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에는 찾아오는 대처 사람들이 선경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중략)
대략적인 코스개요는 당고개에서 출발하여 철쭉동산에서 스탬프를 찍고 잘 다듬어진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 화랑대역까지 걷게 된다.
물론 창포원에서 출발하여 화랑대역까지 1코스 전체를 걸어도 무방하지만 산책을 하고 쉬엄쉬엄 걷고 싶다면 잘라서 걷기를 추천한다.
특히 불암산 숲속에 설치된 도서관 데크에서 명상도 즐기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인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길도 한바퀴 돌아보고
' 학이 이르는 암자'라는 '학도암'까지 잠깐 탐방할수 있다면 금상첨화일것이다
<서울둘레길 1코스 안내도>
<철쭉동산 불암산 우회코스 갈림길 인증 1지점>
조선시대 미륵당과 서낭당이 있어서 '당고개'라 부르던 이곳 당고개역에서 빠져나와
큰 길을 가로질러 신호등도 건너고 길바닥의 서울둘레길 표지를 따라 가다보면 주택가를 지나 철쭉동산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멀리 수락산 치마바위쯤으로 어림짐작되는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산길샘 GPS 위도 : 37.667591, 경도 : 127.084068) (위치 : 당고개에서 650M, 15분소요)
<잘 가꾸어진 '생성약수'는 의외로 음용불가다>
<산책의 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고요함이 진정한 안식을 가져다 줄것이다.
숲속에서 얻는 고요함과 자연의 소리는 뇌에서 α파를 증가시켜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완을 시켜준다니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을것 같다
참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조용한 숲길을 따라t서 걷다보면 몽골풍의 정자가 나오고 버려진 나무로 만들었다는 쉬어가기 좋은 나무의자가 나온다.
<남근석과 여근석>
어렸을적 키득키득 입을 막고 읏음을 자아냈을것만 같은 남녀를 상징하는 기암들이 불쑥 솟아 올라와 있었다.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것 같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근석 즉 '넓적바위'도 근방에 있다는데 못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불암산 두개의 숲속 도서관>
숲을 천년 도서관이라고 했던가요?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숲속의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깐 눈을 붙이는 게으른 풍경이라니 참으로 멋진 일일것 같다.
대충 훓어보니 시나 수필은 거의 없고 아동문학도서 위주로 구성되어져 있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발상이 또 어디 있으랴...
먼저 이길을 걸어간 블랙야크 산책의 힘!!!
김현수 세르파님의 하모니카 연주를 배경삼아 아름다운 시를 낭송했을법한 여운이 아직까지도 짙게 남아 있는것 같았다
불암산 '자락길' 안내판이 설치된 작은 고갯길을 중년의 아낙네 두분이 아무말없이 걸어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참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안전하게 드나들수 있는 자락길 데크길이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픙경이 또 있을까?
방한대를 하고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손자녀석의 의젓한 모습이다
양해를 구하고 앵글에 담아본다
<방송인 최불암 선생 명예산주 시비>
수사반장에서 소박하고 수더분한 시골 아저씨로 변한 정감있는 모습으로
최근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에서 몇번 뵌것 같다
<학도암 가는길>
학도암은 '학이 이르는 암자'라는 의미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고 매우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놀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봄 불암산 학도암 근처에서 발생한 산불 용의자를 찾는다는 플랜카드가 아직까지 붙어 있는것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허용되지 않은 구역에서 취사나 흡연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 나가야할 마운틴 에티켓이 아닐까 한다.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104번지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백사마을...
그 분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다면 한바퀴 돌아보고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어제 김장을 담그고 따라나선 옆지기 눈치를 살피다가 그냥 지나친다
어제 몽촌토성 역사문화 탐방을 가느라고 온가족 김장 담그는날 불참한 죄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ㅎㅎ
우스개 소리로 이 세상에서 세 여자의 말은 잘 들어야 후환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 그리고 마누라 또하나 길도우미 내비게이션 미스김양....ㅎㅎ
말은 틀릴지라도 방향은 맞단다...
불암산 자락길은 이렇게 운치가 있고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다.
솔향까지 짙어오니 저절로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오는구나...
<1차 전망대>
여기는 중간 인증 장소가 절대로 아니무니다...ㅎㅎ
멀리 육사와 서울의료원 신내동 일대가 다 보이는 전망이 뛰어난 곳으로 카메라 버튼이 유혹하지만
지붕 뚜껑이 있는 공릉동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주세요
저도 GPS좌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혹시 몰라 한방 찍어 보았는데
그냥 온다면 십중팔구 여기서 찍은사진을 인증용으로 올릴듯 하니 유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삼육대 갈림길입니다
갑자기 담터쪽 먹골배와 태릉 숯불갈비 생각이 간절해집니다...ㅎㅎ
다시 만난 댕댕이 덩굴...
머루나 담쟁이나 칡이나 등나무나 대부분의 덩굴식물은 몸을 똑바로 지탱하지 못하고 다른 식물에 기생하듯이 달라붙어 산다.
왼쪽으로 휘감든 오른쪽으로 휘감든 타고 넘든 두 식물이 충돌하는 양상은 꼭 요즈음 대립과 반목으로 얼룩져
뇌에서 β파를 마구마구 분비하는 바깥세상 같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그분들부터 서울둘레길을 걷게 하면 뇌에서 α파를 분비시켜 따뜻한 세상을 만들수 있을텐데...
<공릉동전망대>
질그릇 같은 점사표적을 팡팡 깨뜨리던 태릉 클레이사격장을 폐쇄시키고 자연친화적인 환경으로 복원시킨다는 안내문을 보며
긴 데크길을 돌아가면 지붕 뚜껑이 있는 전망대가 나오는데 여기가 중간 인증지점이다.
(산길샘 GPS 위도 : 37.635511, 경도 :127.090307) (위치 : 당고개역에서 4.9km지점, 2H 10소요)
한전 연수원 안내판과 황톳길 양쪽으로 태릉선수촌 녹색 철책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마치 토끼몰이 외통수 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몇몇 철구조물을 지나오면 빛바랜 벽화가 눈에 들어오고 고층아파트와 차소리가 가깝게 들려오는데
녹색갈증을 불러 일으키는 소음의 도시로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공릉산백세문(孔陵山百歲門)>
공릉산백세문을 빠져나와 원자력병원 후문을 보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화랑대역으로 향한다
<화랑대역>
새롭게 경춘선이 개통되기전에 춘천가는 간이역이 있던 화랑대역 소공원이다.
이곳에는 1코스 종료점 스탬프와 2코스 출발점 스탬프가 같이 설치되어 있는 지점이다.
빨간 우체통을 재활용하여 서울둘레길 인증 포인트를 만들어져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잉크 냄새 폴폴 나는 우편엽서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을것이다
(산길샘 GPS 위도 : 37.620447, 경도 : 127.085083) (위치 : 당고개역에서 7.0km지점, 2H 55소요)
간이역에서 플랫폼에서 오지않는 열차를 기다리다 그냥 철길을 걸어보듯 긴 그림자를 남겨본다
솦속 철길의 여운을 이렇게 남겨 두고 또 다른 길을 찾아 조용히 떠나온다
2015.12.6(일). 풍경소리
<탈고(脫誥) 안 될 전설 (유주현. 1921년생)>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에 가서 지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 그들은 내 메말라 가는 서정에다 활력의 역할을 하는 물을 줄 역할을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해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에는 찾아오는 대처 사람들이 선경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원두막에서 낮이나 밤이나 외로이 뒹굴며 시장하면 참외를 따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무료하면 공상을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원고지에 가벼운 낙서하고, 그것도 권태를 느끼면 풀을 베는 마을 아이들을 불러 익은 참외 고르기 내기를 해서 잘 익은 참외를 고른 녀석에게는 잘 익은 놈을, 안 익은 참외를 고른 녀석에게는 씨도 안 여문 참외를 한두 개씩 상으로 안겨 주며 희희낙락,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인가,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는데 뽀얀 우연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찼다. 줄기차게 퍼붓는 빗발은 열 발자국 앞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태초의 음향처럼 사뭇 장엄한 어느 오후였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서 비몽사몽간을 소요하다가 빗소리가 너무도 장엄하여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늘과 땅과 공간이 혼연일체가 된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원두막에서 멀지 않은 밭 언저리로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억수같은 비를 고스란히 맞아 가면 서두르지 않고 유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 사람 등에는 분명 바랑을 지고 있었다. 회색 승복이 비에 젖고 있는 작달막한 키의 여승이었다.
나는 흥미에 앞서 경이의 눈으로, 장엄한 자연 앞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점을 봤다.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발 두 발 옮기는 걸음이 그대로 태산 같은 안정이고 초연이었다.
잠시 후, 여승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원두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생긴 코끝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원만한 턱을 가졌다.
여승은 분명 원두막위에 사람이, 그것도 안경을 쓴 도회풍의 젊은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을 눈치챘으련만, 전혀 도외시한 채 서서히 다가와 낙숫물 듣는 처마밑으로 들어와 비를 긋는 것이다. 관음보살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의 백팔번뇌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되고 있는, 해탈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좀 올라와 쉬시죠.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여자는 대답도 없이, 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빗물 떨어지는 웃옷을 후르르 털고 사다리에 한 발을 걸쳤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원두막 위로 몸을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초면의 남녀가 말없이 앉았기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느 절에 계신가요?”
“불암사에 있습니다.”
불암사란, 원두막에서 10리 쯤 떨어진 조그만 절이지만, 내력은 오래 됐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만 이런 비를 맞으시고 어딜……”
“그저 거닐었습니다. 하도 장하게 오시는 비이기에……”
스물 몇쯤이나 될까, 갸름한 얼굴에는 교양미가 깃들여 있고 흠뻑 젖은 승복은 세련된 여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암사에 오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년 가량 됩니다.”
“서울서 오셨군요?”
“……참외가 참 많이 열렸습니다.”
극성스럽게 쏟아지는 빗발이 무성한 덩굴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희끗희끗 조랑참외가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 승이 시장끼를 느끼고 있음을 눈치채고, 참외를 한 아름 따다가 깎아주었다. 여승은 담백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좀 시장했어요. 아주 달군요.”
잠시 후 여승은 가보야겠다고 일어나더니, 원두막을 내려가 표연히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나섰다.
“절에 한 번 놀러가겠습니다.”
“구경 오시지요.”
이 대화가 그 여승과 나와의 다시는 기약 할 수 없는 작별인사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역시 우연히도 소낙비가 퍼붓는 저녁나절, 내가 있는 그 원두막을 찾아든 젊은 나그네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삼십 전후의 해사한 얼굴의 청년인데, 아깝게도 왼쪽 팔이 하나 없었다.
“이 근처에 혹 절이 하나 없습니까?”
“어느 절을 찾으시는데요?”
“글쎄요, 어느 절이라기보다 여승이 있을만한 절이 혹 없을런지요?.”
나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그 여승의 영상이 머리에 떠올라, 그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전장에 갔다 오셨군요?”
조심스런 내 물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딴전을 보는 그의 표정이 퍽은 쓸쓸했다.
“절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여승을 찾으시나요?”
“둘 다 찾습니다. 여승이 있는 절이 있으면 필요한 자료나 하나 얻으려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자세히 물어보았자 생면부지인 나에게 그가 어떤 긴절한 이야기를 해줄 리도 없을 것이며, 설령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해준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반갑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며칠 동안 그 여승의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사나이가 그 환상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따라서 막상 그 이상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존경의 염과 연연한 마음이 여지없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깨끗하며, 꿈을 먹고 믿음 속에 사는 여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요망한 여자가 악의 구렁에서 헤매던 끝에 문득 깨달은 체하는 가면으로 승복을 빌려 입어, 구렁이 같은 육신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청년은 참외를 하나 달래서 달게 먹더니 대가를 치르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니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받기를 가볍게 거절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불암사를 가르쳐 주어야 옳을 것인가 아닌가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보며 적의를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요 뒷산에 불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거기 젊은 여승 한분이 계시더군요.”
젊은이의 얼굴은 꽃구름처럼 밝아지며 생기가 넘쳐 흘렀다. 그는 더 이상 묻는 말 없이 가버렸다. 잠시 후에 비는 개고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벌써 서녘 하늘에는 저녁놀이 타고 있었다.
이튿날, 황금햇살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걸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참외밭머리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차림의 여인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이 되어 있었다.
별리, 나는 그들의 별리가 어떤 쓰라림을 지닌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진실과 사랑과 참회의 성스러운 자래로 보였다.
나는 그네들이 앞으로는 만날는지 안 만날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들 남녀의 서글픈 전설을 뇌리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구상되지 않을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하지 않을 작정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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