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명소탐방
'암사동 선사유적지'편 사전 답사
♡ 일시 : 2016.3.9(수)
♡ 누구랑 : 나 홀로
이번주 일요일 산책의 힘! 주말팀 트레킹이 3-1코스에서 이루어진다.
서울 둘레길 명소탐방 첫번째로 '암사동 선사유적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당일 10시에 유적지 해설이 에약되어 있어 사전에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재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한강 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집터유적으로 전체 2만 5천여평의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공원 안에는 중앙부에 복원한 움집 9채가 줄지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선사마을 체험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어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유물,유적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며 시간여행을 떠날수 있다.
복원된 움집은 모두 아홉 채로 발굴 당시의 움집터 위에 약 2m 두께의 흙을 덮고 그 위에 가상으로 복원했는데 실제 유구를 직접 훼손하지 않으면서 복원을 하려
안으로 들어가보면 신석기인의 삶을 유추해보는 데 큰 부족함이 없을 만큼 복원이 잘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암사동 유적지 춭토 유물,유구는 갈돌,갈판,도토리,빗살무늬토기,그물추 등을 들수 있으며 아래에서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문화유산해설 이용안내문>
문화유산해설은 인터넷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방문 1일 전까지 예약 가능)/ 대상 : 초등학생~성인
해설 진행의 효율과 쾌적한 관람환경 조성을 위해 1회 해설 예약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합니다/30명 초과 단체는 전화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동절기 운영 변경사항 안내 동절기 기간 : 2015.10.16~2016 .3.3
집결장소 : 제1전시관 / 해설코스 : 제1전시관 → 복원움집 (60분 코스)
※ 해설시간은 동일하며, 위의 집결장소 및 해설코스 순서만 변경됩니다.
※ 폭설, 한파 및 빙판길로 인한 안전상 위험이 있을 경우 야외 해설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해설시간 : 10:00~11:00, 12:00~13:00, 14:00~15:00, 16:00~17:00 (점심시간 13:00~14:00)
※해설코스 : 정문(만남의 장소)→복원움집→제1전시관
※ 동절기에 변경 운영 소요시간 : 약 1시간 / 해설예약문의 02-3425-6520
3회차 주말팀은 10시에 예약이 되어 있어 광나루역에서 9시에 출발하면 부지런히 걸어와야 하므로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야 할것이다.
<제1전시관>
제1전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단연 빗살무늬토기이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유리창 너머로 이 아득한 옛날 토기를 마주 대하면 일단 생각보다 크다는 데 놀라고, 형태와 색감과 크기가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울림이 강렬하여 ‘과연 이것이 7천 년 전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릇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청자나 백자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신석기시대 생활상과 가운데에 움집 내부 모습을 복원하여 빙 둘러보며 탐방을 할수 있다.
<빗살무늬토기>
암사동 선사유적지 출토 유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빗살무늬토기이다. 사진은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빗살무늬토기로 깨어진 것의 조각을 맞추어 구경 19.5㎝ 높이 22.2㎝로 복원한 것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크기에 따라 대·중·소형으로 분류되는데 독처럼 큰 대형은 저장용, 중형은 취사용, 소형은 식기 따위로 사용되었으리라 보고 있다.
암사동에서 발견된 토기로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곡물을 쪄서 먹던 시루로 보인다.
이러한 시루의 발견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곡물을 쪄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암사동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특히 높이 40㎝ 안팎,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입지름을 한 듬직한 크기에 붉은빛 도는 갈색의 것들이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대표한다. 이것들은 섭씨 600~700℃의 열을 가해 구운 것으로, 땅을 판 구덩이에 별다른 시설 없이 장작불을 피워 구워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숭실대 등 발굴을 담당했던 기관에 가면 조각을 맞춰 원형을 회복한 빗살무늬토기의 실물을 볼 수 있으며, 유적지 전시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관>
제2전시관에서는 움집 생활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장감 있는 영상자료, 당시 생활의 축소 모형, 발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모형과 사진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움집 내부모습>
복원된 움집 중 한 곳에는 당시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를 전시하고 있다.
움집 가운데 작은 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난방과 취사를 위한 화덕 자리로 보이고 화덕은 돌이나 진흙으로 둥그런 테두리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움집 귀퉁이에는 작은 구멍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구멍은 식량이나 도구를 넣는 창고로 보인다
사진에서 보듯 움집은 둥글거나 둥근 모서리를 가진 사각형으로 넓이는 요즘 가옥의 안방 크기 정도로 보이며, 5-6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네 귀퉁이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기둥을 세워 집을 세운 흔적을 볼 수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개요>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기원전 5,000년을 전후한 선사시대 사람살이의 자취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지표인 농경의 흔적을 알려주는 유물이나 유구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오히려 채집과 어로 생활의 증거물이기라도 하듯 탄화(炭火)된 도토리와 그물추가 발굴되었으며 석기는 뗀석기와 간석기가 동시에 출토되었다. 그러나 빗살무늬토기가 무수히 출토된 데다 아예 집단으로 정착생활을 했음을 추측케 하는 많은 집터도 확인되어 신석기시대의 징표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제까지 한반도에는 140여 군데 신석기 유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주거지가 확인된 곳은 10여 곳 미만으로, 그조차도 남한 지역에서는 두세 군데에 지나지 않을 만큼 예가 드물다. 그런데 암사동 유적지에서는 무려 25기의 집자리가 드러났으며 그것도 일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집단 집자리임이 밝혀졌으니,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암사동 유적지의 위상과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전경>
발굴 당시 모두 25기의 집자리가 드러났으나 지금은 그 가운데 아홉 채가 복원되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 때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졌다. 한강의 범람으로 유물 포함층이 지상에 드러나면서 많은 석기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때 몇몇 일본인 학자는 ‘몇 트럭분의 양’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엄청난 분량의 토기 조각과 석기를 채집하고, 간단한 시굴조사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뿐, 조사내용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긴 것을 제외하곤 그 이상의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일제강점기가 지나갔다.
광복 후에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이곳이 다시 세상의 이목을 모으게 된 것은, 1960년 서울 장충고등학교 야구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6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조사단에 의한 정식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67년에는 고려대·숭실대·경희대·전남대로 구성된 대학연합 발굴조사단의 발굴이 있었고, 1971~7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의 집중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이곳은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임이 밝혀져 1979년 사적 제267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후속 조치로 유적지 일대의 보존과 선사시대 학습장 확보를 위한 선사유적공원 조성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1984년 복원자료 수집을 위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재발굴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집자리는 모두 지하로 1m 미만의 땅을 파고 세운 움집터이다. 평면의 모양에 따라 원형과 네 모서리를 약간 죽여 원형에 가까운 사각형인 말각방형 집자리로 나뉘는데, 후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크기는 원형의 경우 지름이 5m 내외이고, 말각방형은 가로와 세로가 대체로 5~6m 안팎이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6호 집자리는 중앙부를 원형으로 다시 파낸 이중 구조에 출입구가 계단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집자리마다 각기 중앙에 가로세로 50~70㎝ 정도 크기의 네모진 화덕자리가 하나씩 있고, 출입구는 남향이다. 또한 몇몇 집자리는 겹쳐 있기도 하여 앞시대의 집자리 위에 새로운 집자리가 들어선 적도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이들 집자리에서는 불탄 기둥 등 목탄(木炭)도 여러 군데서 발견되었는데,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대충 기원전 5,000년을 전후한 시기의 유적으로 밝혀졌다.1)
<움집터>
1984년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대개 원형이나 말각방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5~6m 가량이다. 움집터 내부에는 강돌을 돌려 만든 화덕과 기둥자리가 있다.
암사동 유적지는 가장 현저한 빗살무늬토기 출토지 가운데 하나이다. 보통 빗살무늬토기는 형태에 따라 마치 커다란 계란을 가로로 절단한 모양으로 바닥이 뾰족한 첨저형(尖底形)과 바닥이 편평한 화분 모양의 평저형(平底形)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것은 첨저형으로, 토기의 표면에는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이가 달린 무늬새기개로 긋거난 눌러서 빗살, 생선뼈, 손톱, 무지개, 문살 등 다양한 무늬를 새긴 것이다. 무늬는 토기 표면 전체 또는 일부에만 새겼는데, 토기 겉면을 위로부터 삼등분하여 구연부(口緣部), 기복부(器腹部), 저부(底部)로 나눌 때, 부분마다 각기 다른 무늬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구연부에는 평행으로 촘촘하고 짧게 그은 사선무늬가 가장 많고, 기복부에는 평행하는 사선을 어긋나게 그어 마치 살을 발라낸 생선의 뼈처럼 보이는 생선뼈무늬[魚骨文]가 주로 장식되며, 저부에는 평행하는 사선무늬나 생선뼈무늬 등을 새겨넣는 경우가 흔하다.
<선사체험마을>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팔당댐에서 한남대교에 이르는 한강변 좌우에는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이 펼쳐져 있었으며 역사시대 유적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그 많던 유적지는 모두 사라지고 암사동 선사유적지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강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음을 희미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구석기시대를 구분짓는 특징으로 수렵·어로·채취, 뗀석기, 이동생활 따위를, 신석기시대의 지표로는 농경, 간석기, 토기의 발생, 정착생활 등을 꼽는다. 특히 농경의 시작으로 인해 토지생산성의 비약적인 증대와 잉여의 발생, 인구의 증가 등 인류 문명을 질적으로 변모시킨 신석기시대의 변화를 ‘신석기 혁명’이라고 한다.
신석기시대를 이렇게 정의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의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V. Gorden Childe)로 193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차일드의 정의는 중동 지방을 모델로 한 개념일 뿐 세계 모든 곳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세계 각지의 사례 연구를 통해 신석기 문화의 특징을 모두 갖춘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늘날에는 단지 토기의 유무만을 기준으로 신석기시대라 부르는 문화 단계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산책의 힘! 주말팀 3회차 암사동 선사유적지 사전답사를 마치며...
2016.3.10(목) 마운틴셰르파4기 이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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