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보훈의 달맞이] 북한산 애국선열묘역과 민주묘지, 왕실묘역 순례
매년 6월에는 북한산 순례길 역사문화 탐방이 이어집니다
♡ 일시 : 2016.6.4(일) 10:00~16:00
♡ 코스 : 연산군묘~정의공주묘(개별방문)~봉황각~소나무숲길~국립4.19민주묘지~근현대사기념관~이준열사묘역입구
♡ 누구랑 : 이천관 셰르파님과 함께 떠나는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단과 함께
<출발전 모습>
2016년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단과 함께 북한산 애국순국선열묘역과 민주묘지,왕실묘역길을 순례하였다
작년에는 순국선열묘역과 왕실묘역길을 두번에 나누어 진행했는데 올해는 한번에 탐방을 하게 되었다
매년 6월이 오면 그 분들의 호국정신과 고귀한 희생에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트레킹하는것도 큰 의미가 있을것 같다
새로 오신 분들도 소개하고 진행을 도와주실 셰르파들도 인사하고 지난번 한양도성 울트라랠리 완주자에 한해서
이천관 셰르파님이 직접 제작한 기념액자를 선물해 주셔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도봉 현대사 인물을 소개해 놓은 꽃담으로 작가 김수영 선생에 대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는다
원당정 연지를 배경으로 녹색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청초하게 다가온다
<연산군 묘>
북한산 둘레길(서울둘레길 8-5코스와 겹침)에는 조선 제9대 성종의 맏아들로 중종반정 때 폐왕이 된 연산군(燕山君,1476~1506)의 묘와
세종대왕의 둘째딸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한 정의공주 묘가 있어 왕실묘역길이라 이름 지어졌다.
연산군묘는 연산군과 그의 부인 거창 신씨의 묘소로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의 딸이다.
연산군묘는 연산군과 그 부인 신씨의 묘 앞에 후궁 조씨의 묘, 딸과 사위 구문경의 묘가 함께 있는 가족묘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원래 연산군의 묘는 유배지 강화도의 새끼섬 교동도에 있었다. 연산군 부인 폐비 신씨는 연산군을 이장해 줄 것을 중종에게 부탁하여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 이장하게 되었다. 중종은 이장을 허락하면서 왕자군(王子君)의 예우로 개장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이장경비를 허락하였는데 콩과 쌀 100섬, 면포 150필, 정포 100필, 참기름 2섬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1537년 66세로 세상을 떠난 폐비 신씨도 연산군 옆에 묻혀 있다. 연산군묘에는 공장, 상석, 장명등석, 향로석, 두 쌍의 문인석이 있으며 왕릉에서 제사를 올리는 정자각이 없고 상석만 있고 비각이나 묘비는 없다. 연산군묘비 앞면에는 燕山君之墓(연산군지묘), 부인 신씨의 묘비는 앞면에 거창신씨지묘(巨昌愼氏之墓)라는 글씨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연산군은 성종(成宗,1457~1494)과 윤기무의 딸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나 7살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9세에 조선 제10대 임금이 되었다.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 임금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낸 죄로 폐비가 되어 대궐에서 쫓겨 나가게 되지요. 폐비 윤씨를 폐출시키는데 앞장섰던 인수대비와 성종의 후궁들은 위기를 느끼면서 윤씨를 갖은 모략으로 얽어 성종은 사약을 내리지요...
연산군은 즉위 초에는 성종시대에 형성된 평화로운 풍요가 그대로 이어져 왔었고 즉위 초기 4년간은 성종말기에 태동한 퇴폐풍조와 부패상을 없애는 업적을 남기며 조선 성종시기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학문장려에 힘써 문치에도 힘을 기울였지요. 그러나 1498년의 무오사화,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과 갈등,왕권을 강화하면서 각종 향락에 빠져 들고 급기야는 흥청망청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되고 결국 인수대비를 들이받아 즉음에 이르게 하고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는데 관련한 모든 사람들의 팔촌까지 멸하고 한명회는 부관참시하여 뼛가루를 바람에 날려 버리고...바로 갑자사회의 지극이 이어지지요.
<연산군묘 재실>
<원당샘(元堂泉)>
연산군묘와 방학동 은행나무 주변에 위치한 ‘원당샘’은 600여년 전 파평윤씨 일가가 자연부락인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옛 주민들의 식수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며 지금까지도 약수터로 활용되고 있다
<방학동 은행나무>
방학동 은행나무(放學洞 銀杏나무)는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1호(1968.2.26.)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3호(2013.3.28.)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나무의 높이는 24m, 둘레는 9.6m, 수령은 약 600년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최고령 그룹에 속하는 은행나무로 그 모습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워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였고,
이 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정의공주묘(貞懿 公主墓)>
연산군묘에서 바로 우이동 방향으로 이동한 도전단들은 정의공주묘를 못보고 지나갔을것이다
다행히 후미 몇명을 모시고 정의공주묘를 탐방할수 있었다
양효안공'신도비'부묘소[ 良孝安公神道碑附墓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의공주는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둘째 딸로 어머니는 소현 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고
소현왕후는 아들8명 딸2명을 낳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조선의 제5대 왕 문종의 누이동생이자 제7대 왕 세조의 누나가 된다.
세종은 18남 4녀를 둔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첫째가 문종, 둘째가 세조(수양대군), 세째가 안평대군, 여섯째가 금성대군....
어쨋든 정의공주는 문종의 누이동생이며 수양대군의 누나였다
정의 공주의 뛰어난 재주와 관련하여서『죽산 안씨 대동보』에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와 관련된 일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변음토착(變音吐着)을 완전히 구하지 못하여서 각 대군들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는데
정의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가 곧 풀어 바쳐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 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봉황각>
북한산 우이동을 드나들면사도 이곳이 3.1 독립운동의 발상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분들이 많이 있었을것이다.
1912년 6월 19일 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孫秉熙:1862∼1922)’이 지은 누각으로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고도 한다.
의암 손병희선생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하고 교육과 출판문화 운동으로 300만 교도를 이끌면서 조국독립과 민중계몽을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만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뿌리내리게 하고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며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봉황각을 지었다고 한다.
1912년 4월 15일부터 지방에서 21명을 선발하여 수련을 시켰으며, 1914년 4월까지 3년간 총 483명을 수련시켰고
1919년 3·1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했으며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15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걸려있는 '봉황각' 현판은 ‘오세창’이 썼는데 ‘봉(鳳)’자는 당나라 명필 안진경(顔眞卿)의 서체를, ‘황(凰)’자 또한 당나라 명필 회소(懷素)의 서체를, ‘각(閣)’자는 송나라 명필 미불(米芾)의 서체를 본뜬것이라고 하며 총 7칸 규모의 목조 기와로 된 2층 한옥이며 건물은 '을(乙)자형'으로 뒷건물은 살림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손병희선생 묘소>
<솔밭길>
서울둘레길 8-4코스인'소나무숲길'은 서울에서 유일한 평지형 소나무군락지로 백년이 넘는 소나무 100여그루가 있는 코스로
곳곳에 약수터와 자수박물관, 이용문장군묘역,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선생 묘역등이 조성되어 있어 독립정신과 애국심을 느낄수 있는 구간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북한산과 도봉산 자락의 기존 샛길을 연결하여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산책로로 각각 소나무숲길·순례길·흰구름길·솔샘길·명상길·평창 마을길·옛성길·구름 정원길·마실길·내시 묘역길·효자길·충의길·송추 마을길·산너머길·안골길·보루길·다락원길·도봉 옛길·방학동길·왕실 묘역길·우이령길로 부르고 일부구간은 서울둘레길과 겹쳐서 운영되고 있다
<국립 4.19 민주묘지>
1960년 4월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독재권력에 항거한 시민혁명이 일어나지요.
자유당 독재정권의 하수인인 경찰의 발포로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로 인해 국민적 분노가 넘쳐서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 같았던 독재정권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지요...
이때 꽃잎처럼 스러진 199위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국립4.19민주묘지입니다.
한땐 ‘혁명’ 또는 ‘의거’로 불리다가 1993년에 이르러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어 비로소 ‘4·19혁명’으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근현대사기념관>
강북구청에서 지난 5.17 개관한 근현대사기념관은 3.1운동 발상지인 봉황각과 국립4.19민주묘지를 비롯 이준 열사, 이시영 선생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16위의 애국.순국선열 묘역이 자리하고 있는 북한산 슈유동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전시관은 세 존으로 A존은 ‘짓밟힌 산하와 일어선 민초들’이라는 주제로 동학농민운동과 항일의병전쟁, 3?1운동과 임시정부, 독립투쟁 등을 다루었고 B존은 ‘시대의 마감과 민주의 마중’을 주제로 한 영상미디어 홀을, C존은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 4.19혁명 등 광복 이후 민주발전사를 통한 대한민국의 오늘을 다루고 있었고 전담 해설사가 해설을 해 주었으나 아직 전시물등이 완비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학혁명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후 4.19혁명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격동기 근현대 역사가 모두 담겨 있는것 같았고 지방자치단체인 강북구에서 운영한다는것은 대단히 잘 한 일인것 같다
<이준열사 묘역>
매년 6월이 오면 현충일을 가장 먼저 생각할것입니다
현충일은 24절기중에 9번째인 망종과 같은 날이라고 합니다
벼같이 까끌까끌한 낟알곡식을 한자로 망(芒)이라고 하고, 농부가 모종을 땅에 심는일을 한자로 종(種)이라고 한답니다
즉, 망종이라는 말속에는 곡식을 옮겨 심을 적당한 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망종때에는 절기 이름이나 '망종전에 보리를 베라'속담처럼 무척 바빴다고 합니다
더불에 보리를 수확한것에 감사하고 모내기한것이 가을에 풍년이 들기를 바라며 조상께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1956년에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6월중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오랜 풍습이 있던 망종 절기(6월6일 무렵)를 현중일로 정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현종때에도 6월6일에 숨진 병사들을 애도했다고 하네요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단과 함께 탐방한 북한산 애국선열묘역과 민주묘지, 왕실묘역 순례길을 돌라보면서 그 분들의 희생에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해봅니다
2016.6.5(일). 마운틴세르파 이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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